사상 첫 8강, 박항서는 '베트남 히딩크'가 될 수 있을까



부임한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베트남은 지난해 7월 홈에서 열린 동남아시아(SEA)게임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이 때문에 당시 대표팀을 지휘하던 응우엔 후 탕 감독이 경질됐고, 그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이가 바로 박 감독이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기대 속에서 감독직을 맡은 만큼, 성적에 대한 압박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임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박 감독은 자신을 향한 우려의 시선을 '박항서 매직'에 대한 열광으로 바꿔 놓았다. 시작은 지난해 12월에 열린 M-150컵이었다.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끌고 이 대회에 출전한 박 감독은 3·4위 결정전서 만난 태국을 꺾고 베트남에 동메달을 안겼다. A대표팀 그리고 U-23 대표팀을 통틀어 베트남이 태국전에서 승리한 건 2008년 이후 10년 만이었다. 베트남 국민들은 그토록 열망했던 태국전 승리를 안겨 준 박 감독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현지 매체들도 베트남의 '황금 세대'가 한국의 정상급 지도자를 만나 시너지가 폭발했다고 평가하며 박 감독에게 힘을 실어 줬다.
 
태국전 승리로 탄력을 받은 '박항서 매직'의 진가는 중국 장쑤성에서 열리고 있는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빛을 발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한국·호주·시리아와 함께 D조에 묶인 베트남은 유력한 탈락 후보였다. 누구나 한국과 호주가 조 1·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했고, 베트남의 반격을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1차전에서 김봉길(52) 감독이 이끄는 한국을 상대로 접전 끝에 1-2 석패를 당하더니 2차전서 호주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17일에 열린 조별리그 최종전인 시리아와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8강행을 확정 짓자 베트남 주요 도시에선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길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흡사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도 한 듯 베트남의 8강 진출을 기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AFC U-23 챔피언십에서 승리한 것도, 8강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국영 라디오 방송 VOV도 "베트남 U-23 대표팀이 기적을 썼고,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6년 전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이끌고 느꼈던 감정, 새 역사를 쓰는 '짜릿함'을 지금 박 감독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오는 20일에 열리는 8강에서 강팀 이라크와 만난다. 쉽지 않은 상대지만, 박 감독은 시리아전이 끝난 뒤에 "8강 상대인 이라크는 강하지만 내겐 그들을 상대할 계획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베트남과 이라크의 8강전은 '베트남의 히딩크'로 떠오르고 있는 박 감독이 또 한 번 기적 같은 승리를 보여 줄지, 한국의 축구팬들도 주목할 만한 경기다.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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