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백넘버 7번'은 성스러운 번호다. 맨유를 상징하는 한 선수의 번호를 넘어 맨유의 정체성과 역사를 대변하는 번호기 때문이다. 1878년에 창단한 맨유의 역사는 맨유 7번의 활약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맨유 최고의 선수의 등에 7번이 달렸다는 의미다. 또 맨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7번이 있었다. 그중 7번의 전설을 만든 '6인'을 소개한다.
바비 찰튼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것에 이견이 없는 전설이다.
찰튼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총 17시즌 동안 맨유에서 활약하며 758경기에 출전해 249골을 넣었다. 758경기 출전은 라이언 긱스에 이은 맨유 최다 출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49골 역시 웨인 루니에 이은 2위다.
그는 맨유의 황금기를 이끈 주인공이다.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그리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의 전신인 유로피언컵 우승도 1회 차지했다.
맨유에 찰튼의 더욱 큰 의미는 몰락하던 맨유, 시련의 맨유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영웅이라는 점이다. 1958년 뮌헨 참사로 맨유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뮌헨 참사 생존자로서 찰튼은 팀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을 담아 팀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맨유의 정신적 지주로서 팀을 이끌었다. 찰튼은 약속을 지켰다. 1967~1968시즌, 뮌헨 참사 10년 뒤 찰튼은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다.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유로피언컵 우승이었다. 맨유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바비 찰튼-조지베스트
조지 베스트
찰튼 옆에서 맨유 재건에 큰 도움을 줬던 맨유 최고의 공격수 조지 베스트 등에도 7번이 달렸다.
베스트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11시즌 동안 맨유에서 474경기 출전, 181골을 성공시켰다. 리그 우승 1회, 유로피언컵 우승 1회를 차지했고, 1968년에는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다. 1968년 발롱도르 수상은 당연한 결과였다.
베스트는 드리블의 신으로 불렸다. 그리고 빼어난 득점력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베스트의 결정적 장면은 역시나 당대 최고의 선수 에우제비오가 이끌던 벤피카와 격돌한 1967~1968시즌 유로피언컵 결승전이다. 베스트는 최고의 활약으로 맨유의 우승을 이끌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베스트를 향해 '5번째 비틀스 멤버'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당시 펠레는 "베스트는 나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극찬했다.
브라이언 롭슨
맨유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주장 브라이언 롭슨을 빼놓을 수 없다.
롭슨은 1981년에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맨유로 이적했다. 1994년까지 13시즌 동안 461경기 출전, 99골을 넣었다. 그리고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를 기록했다. 맨유에서 가장 완벽했던 미드필더로 꼽힌다. 세밀한 패스와 중원 장악력은 가히 최고였다.
롭슨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주장으로서 맨유를 다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1982년부터 1994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주장 완장을 찼다. 맨유 역사상 최장 기간 주장이었다. 1986년 맨유의 전설적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주장은 롭슨이었다. 롭슨은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 적응하고 맨유를 발전시키는 데 옆에서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롭슨이 없었다면 '퍼거슨의 맨유 황금기'도 찾아올 수 없었다.
에릭 칸토나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프랑스인'. 에릭 칸토나를 표현하는 말이다.
칸토나는 별명이 많다. '맨유의 신' '올드 트래포드의 왕' 등. 그는 짧은 기간 동안 활약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시즌 동안 185경기에 출전해 82골을 터뜨렸다.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된 뒤에 맨유가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칸토나였다. 관중에게 이단 옆차기를 하는 등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사건도 많이 일으켰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맨유 최고였다. 득점력과 함께 찬스를 만들어 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도움왕을 2번이나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칸토나를 앞세운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다음 해에도 왕좌를 차지하며 2연패를 일궈 냈다. 칸토나는 이후 2번의 우승을 더 차지했다. 맨유에서 활약한 5시즌 동안 4번이나 우승한 것이다. FA컵 우승도 2차례나 일궈 냈다.
데이비드 베컴
맨유의 백넘버 7번이 세계적인 문화로 뻗어 나가게 한 장본인은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킥의 마술사' 베컴은 빼어난 실력과 함께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맨유 유스 출신으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11시즌을 맨유에서 활약했다. 394경기에 출전해 85골을 성공시켰다.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2회 그리고 UCL도 1회 정상에 섰다. 맨유 역사상 최고 황금기, 그 중심엔 베컴이 있었다.
특히 1998~1999시즌 베컴이 중심을 잡은 맨유는 잉글랜드 축구 클럽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리그·FA컵·UCL 동시 우승)을 달성했다. 1999년에 베컴은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유 백넘버 전설의 마지막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그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호날두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시작은 맨유였다. 포르투갈 스포르팅에서 유망주였던 그는 2003년 맨유로 이적한 뒤에 잠재력과 가능성이 폭발했다. 2009년까지 6시즌 동안 맨유에서 292경기, 118골을 넣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맨유의 리그 3연패 최선봉에는 언제나 호날두가 있었다. FA컵 우승 1회와 함께 UCL도 정복했다. 리그 득점왕과 UCL 득점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호날두는 2008년에 일인자가 됐다. 그는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세계 최강 호날두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알렉시스 산체스
호날두가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뒤에 맨유 7번의 계보는 끊겼다.
이후 안토니오 발렌시아, 마이클 오언, 앙헬 디 마리아, 멤피스 데파이 등이 백넘버 7번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모두 실패한 7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새로운 7번이 탄생했다. 이번에는 맨유 7번의 아성을 이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알렉시스 산체스기 때문이다.
산체스는 2014년 바르셀로나에서 아스널로 이적한 뒤에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아스널에서 165경기에 출전해 80골을 넣었다. 맨유는 이런 산체스를 영입하기 위해 꾸준히 시도했고 지난 23일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산체스 영입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 6개월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발표는 산체스가 등번호 7번을 단 것이다.
산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에 합류해 몹시 흥분된다. 조제 무리뉴 감독과 함께 역사적인 구단에서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칠레 선수 중 처음으로 맨유 선수가 돼 자랑스럽다. 이 구단이 왜 나를 원했는지 전 세계 팬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