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시청률 10%를 넘기며 종영한 tvN 수목극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감빵생활)'에는 주인공이 없다. 주·조연 할 것 없이 모두가 화제였고 그 중심에는 3인방 박호산(문래동 카이스트)·정민성(고박사)·이규형(해롱이)이 있다.
어디서 본 듯하나, 재빨리 떠오르지 않는 세 사람의 모습. 실제 수감 생활을 해 봤나 싶을 정도로 '슬기로운' 연기 생활을 보여 줬다. 낯선 얼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도합 61년 차 베테랑들이다. 박호산은 연극계에서 정민성은 드라마와 영화, 이규형은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박호산은 혀짤배기소리로 드라마 캐릭터의 한 획을 그었다. 욕설과 상표를 말해도 부정확한 발음 덕분에 그대로 나갈 수 있었다. 후반부에서 조용히 사라지자 "카이스트 도다와(돌아와)"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혀짤배기소리가 가끔씩" 나온다는 박호산은 술을 몇 병 비우자 실제 혀가 짧아졌다.
정민성은 드라마 내내 많은 대사량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었다. 극이 흘러갈수록 그의 말도 빨라졌고 아나운서 뺨치는 또박또박한 발음과 속도까지. "빠르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말하다 보니 빨라진 거예요. 그래서 NG도 많이 났고요." 정민성은 고 박사 느낌을 내기 위해 안경까지 그대로 쓰고 왔다.
해롱이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출소하자마자 다시 마약에 손대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줬지만 '해롱이에게 과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사실 출소하자마자 다시 약에 손대는 건 초반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이에요. 함정수사에 걸려든 건 몰라서 나도 놀랐고 당황스러웠죠."
세 사람이 모인 건 드라마 종영 일주일만. 서로의 안부도 묻고 종영 인터뷰도 봤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 갔다. 평소에도 술자리가 잦다며 서로의 주량도 체크했다. 안주로 두부를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농담에 크게 웃었다. 마침 이날은 경기도 양평에서 배우들의 엠티가 있었다. 3시간여 술잔을 기울인 이들은 "아예 양평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걸 그랬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 공식 질문이에요.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박호산(이하 박)= "술집에 가면 '몇 시에 닫아요'라고 물으면 '손님 계실 때까지요'라고 하잖아요. 그 느낌이에요. 몇 병을 마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술을 매일 마셔요. 소주 세 병 정도 마셔요. 어렸을 땐 더 마셨어요. 전성기 때 기록이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정민성(이하 정)= "기분 좋으면 맥주 1.5리터 정도 마셔요. 더 기분 좋으면 2리터도 가능해요. 소주는 잘 안 마시고 주사는 없어요. 했던 얘기 또 하고 말이 좀 많아지긴 해요." 이규형(이하 이)= "술을 좋아해요. 지금은 공연을 하고 있어서 자제하고 있어요. 컨디션에 따라 좀 다르지만 소주는 두 병 정도 마셔요. 소주만 먹는 스타일이에요. 주사도 딱히 없어요." 박= "두 사람은 전혀 주사가 없어요. 그건 장담합니다."
- '감빵생활'로 인기를 엄청 얻었어요. 정= "많은 분들이 알아봐 줘서 감사해요. 막내가 여섯 살인데 어깨를 펴고 다녀요. 유치원 원장님이 먼저 알아봐 줬어요. '고 박사'가 이감하는 날 아홉 살짜리 아들은 본방을 보고 정말 서럽게 울더라고요. 아이가 드라마를 볼 줄 알아요." 박= "주목받지 못한 배우들이 모여서 큰일을 냈어요. '고 박사'가 떠날 때 내가 떠나는 것 같아서 나도 감정이입이 됐어요."
- '고 박사'가 일찍 하차했어요. 정= "많이 아쉬웠어요. 실연당하는 느낌이었어요. 미리 빠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바쁘게 촬영하다 보니까 잊었거든요. 8회에서 몸이 갑자기 아프더라고요. '난 역시 10회까지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난 정리를 잘하고 나갔는데, 두 사람은 짐도 못 챙겨(박호산), 집에도 못 가고 잠깐 바람 쐬고 사라졌잖아요.(이규형)"
- '문래동 카이스트'는 혀짤배기소리로 사랑받았죠. 박= "그 사랑은 박호산이라는 배우가 얻은 게 아니라 '문래동 카이스트'가 받은 거예요. 그래도 행복하고 기분 좋아요. 인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이걸 유지하려면 다음 작품에도 열심히 임하려고 해요. 인기를 얻고 가장 행복한 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들어온 대본이 정말 많아요. 신중을 기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뒤로 가면 안 되잖아요.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야 할 부분이 있어요."
- '해롱이'는 역대급 캐릭터였어요. 이= "이 정도 반응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약쟁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지 상상 못 했거든요. '특이한 캐릭터가 나오겠다. 재밌게 잘해 봐야지' 했는데 '문래동 카이스트'와 붙으면서 케미스트리가 나온 것 같아요. 니킥을 하는 장면도 원래 없었던 거예요. 신원호 PD님의 아이디어예요. 무엇보다 가족들이 가장 좋아해 줘요. 어제도 사인해서 보내 드렸는데 기분 좋아요. 집 밖으로 잘 안 돌아다녀서 인기는 실감이 안 나요."
- 많이 알아보지 않나요. 이= "형님들과 술 먹고 있으면 다들 죄수들이라 불쌍해서 그런지 계산을 해 주고 가세요.(웃음) 작품도 오디션이 아닌 제안이 들어와요. 좀 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지금도 인터뷰하는 게 신기해요. 언제 이런 걸 먹으면서 인터뷰하겠어요." 박=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 설명도 안 하고 계산하고 갔더라고요. 공짜가 많아졌어요.(웃음)" 정= "실물이 더 낫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내 얼굴이 큰 줄 알았나 봐요. 아닌데."
- 세 분의 첫 만남 기억나나요. 박= "(이)규형이는 원래 알고 있었어요." 정= "다들 친분이 조금 있었고 나만 이번 작품으로 이들을 알게 됐어요." 이= "오디션은 배역 없이 진행됐어요. 나만 '해롱이'로 정해진 상태서 오디션을 봤어요. 신 PD가 아예 절 염두에 두고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 그에 대한 이유도 들었나요. 이=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에서 용의자 역할을 했는데 1인 4역이었어요. 두 번째 용의자가 만취해서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역할이었어요. 톤만 좀 '해롱이'스럽게 바꾸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 다른 분들은 어떻게 배역을 받았나요. 박= "가장 마지막에 결정됐어요. 제작진과 오디션을 진짜 많이 봤어요. 모든 배역을 다 읽어 봤어요. 네 번째 오디션에 갔을 때 '이 정도로 사람을 왔다 갔다 하게 해 놓고 떨어뜨리면 'X아치'인 것 알죠'라고 말했어요. 그때 마지막으로 읽은 게 '문래동 카이스트'였죠. 신 PD가 전화번호를 물어보기에 '됐다' 싶었죠. 어떤 계약서보다 믿음직했어요. 신 PD가 어느 인터뷰에서 '문래동 카이스트'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던데 그만큼 캐스팅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정= "원래는 조 주임과 변호사로 오디션을 봤어요. 그러다가 두 달 뒤에 연락이 와서 '고 박사'를 읽었죠. '문래동 카이스트'도 연습해 봤는데 입에 안 붙더라고요. 일주일 뒤 3차 오디션을 보고 난 다음에 전화번호를 물어보더라고요."
- 다들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정= "대사가 정말 많았어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대사가 많아서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아서 말도 빨리 했어요. NG도 많이 났어요."
- 혀짤배기소리로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박= "처음 만들 때 힘들었고 만든 다음부턴 괜찮았어요. 지금도 혀짤배기소리가 나와요. 어느 정도 혀짤배기소리를 낼 것인가. 'ㅅ'을 전부 'ㄷ'으로 바꿀 건지 슬기롭게 풀어 나가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1·2회 때 안 나와서 연습할 시간이 많았어요."
- 시즌2가 한다면요. 박 "어떤 배우가 시즌2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그건 신 PD의 결정에 달려있은 거죠. 신원호의 호자가 '배' 같아요." 정 "당연히 가야죠. 한 작품했는데 스태프의 신뢰는 어마어마해요. '신' 같아요. 게다가 수평적인 관계에요. 그런 현장은 처음 봤어요. 감독의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그런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