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③]이규형 "끊겼던 여성들에게 자꾸 연락 와요"
2018년 첫 '대박'의 주인공이다.
최고시청률 10%를 넘기며 종영한 tvN 수목극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감빵생활)'에는 주인공이 없다. 주·조연 할 것 없이 모두가 화제였고 그 중심에는 3인방 박호산(문래동 카이스트)·정민성(고박사)·이규형(해롱이)이 있다.
어디서 본 듯하나, 재빨리 떠오르지 않는 세 사람의 모습. 실제 수감 생활을 해 봤나 싶을 정도로 '슬기로운' 연기 생활을 보여 줬다. 낯선 얼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도합 61년 차 베테랑들이다. 박호산은 연극계에서 정민성은 드라마와 영화, 이규형은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박호산은 혀짤배기소리로 드라마 캐릭터의 한 획을 그었다. 욕설과 상표를 말해도 부정확한 발음 덕분에 그대로 나갈 수 있었다. 후반부에서 조용히 사라지자 "카이스트 도다와(돌아와)"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혀짤배기소리가 가끔씩" 나온다는 박호산은 술을 몇 병 비우자 실제 혀가 짧아졌다.
정민성은 드라마 내내 많은 대사량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었다. 극이 흘러갈수록 그의 말도 빨라졌고 아나운서 뺨치는 또박또박한 발음과 속도까지. "빠르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말하다 보니 빨라진 거예요. 그래서 NG도 많이 났고요." 정민성은 고 박사 느낌을 내기 위해 안경까지 그대로 쓰고 왔다.
해롱이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출소하자마자 다시 마약에 손대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줬지만 '해롱이에게 과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사실 출소하자마자 다시 약에 손대는 건 초반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이에요. 함정수사에 걸려든 건 몰라서 나도 놀랐고 당황스러웠죠."
세 사람이 모인 건 드라마 종영 일주일만. 서로의 안부도 묻고 종영 인터뷰도 봤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 갔다. 평소에도 술자리가 잦다며 서로의 주량도 체크했다. 안주로 두부를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농담에 크게 웃었다. 마침 이날은 경기도 양평에서 배우들의 엠티가 있었다. 3시간여 술잔을 기울인 이들은 "아예 양평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걸 그랬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②에서 이어집니다
- 시청률도 좋을 거로 예상했나요.
박= "어떻게 알아요. 짬밥이 있어야 알죠. 이렇게 재밌으면 '시청률은 어느 정도 나올 거야'라고 말하는 선배가 있던가. 그런 게 없었어요. 오히려 신 PD가 가장 불안해했어요. 신 PD는 겸손한 사람이에요. 종방연 가서 처음 들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감빵생활'을 한 것도 있대요."
- 이규형씨는 여성팬이 늘었죠.
이= "실감할 만한 상황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반응이 와요. 부모님이 기사를 캡처해서 보여 주고,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 와요. 아! 자꾸 연락 끊겼던 여자들한테도 연락이 와요. 왜 이제 와서 그럴까요. 사연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아는 사람도 있었고. 내 휴대전화 번호는 지금 10년 넘게 쓰고 있어요."
정= "우리 가족들도 내가 아닌 규형이를 물어봐요. '규형이는 몇 살이니'라고. 게다가 어머니는 '규형이는 어떤 애냐'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박= "아마도 모성애를 자극해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 연관 검색어에 결혼이 나오던데요.
이= "나도 궁금해요. 왜 연관 검색어에 결혼이 나오는 걸까요. 다들 검색해 보나 봐요. 결혼 안 했습니다.(웃음) 여자분들이 검색해서 나온 거라고 생각할래요."
-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요.
이= "성공하면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대학로에 있는 배우들이 매체 쪽으로 나오려면 스케줄을 비어야 해요. 그럼 생계에 문제가 생겨서 돈을 못 벌어요. 나 혼자라면 버틸 수 있는데 처자식이 있으면 그걸 놓을 수 없어요. 이런 배우들이 정말 많아요. 대학로에서 연극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어차피 연기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대하자마자 대학로에서 연기했어요. 한달에 20만원 정도 벌었나. 생활이 당연히 안 됐죠. 졸업하고 2009년도쯤에 뮤지컬 '빨래'를 했을 때도 5만원씩 받고 세금 떼면 70만원 정도? 이것도 연습 기간 빼고 계산한 거예요. 연기 레슨 알바를 하면서 버텼죠. 스무 살 때부터 집에서 한 푼도 안 받았어요. 대출 받고, 공연하고 번 돈으로 갚았어요. 아마 IMF 때 집이 폭삭 망하면서 일찍 철든 것 같아요."
- 이번 작품이 터닝 포인트인가요.
정= "그럼요. 이제 시작이에요."
박= "분명히 인생의 터닝 포인이트죠. 연극배우를 대거 기용하고 성공한 경우가 없었어요. 이런 배역으로 간다는 걸 첫 대본 리딩 때 알았어요. 모이니까 '여기 대학로야'라는 말을 했죠. 2상6방 친구들은 더 친근한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잘하지 못하면 대학로 배우들이 피해를 볼 것 같았어요. PD들도 더 이상 연극배우를 쓸 용기를 못 낼 수 있잖아요. 대학로를 대변하는 무명 배우들이란 사명감이 있었어요."
정= "저평가받았던 느낌이 항상 있었는데 제대로 평가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못하면 안 되니까 부담감이 컸죠"
박= "그러면서도 이들이 선수들인 게 남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고 밀어줄 땐 밀어줬어요. 경쟁도 있었지만 팀 내 경쟁 느낌이었죠. 쇼트트랙 단체 경기를 하는 느낌? 1번과 2번을 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정= "형님은 너그럽겠지만 난 정말 치열했어요. 1번 많이 가다가 빨리 아웃됐죠.(웃음) 8화에 요로결석 때문에 내가 아파야 하는데 규형이가 담요를 덮고 덜덜 떨면서 아파하는 거예요. 나보다 아파하기에 박해수한테 '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냐'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어요. 기분 좋은 경쟁이었어요."
-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정= "연극과 나와서 자연스럽게 연기하다가 중간에 회사를 오래 다녔어요. 서른 살부터 뒤늦게 극단을 알아봤어요. '회사는 때려치웠는데 나는 뭘 해야 하지' 하다가 단편영화를 시작했어요. 주업이 단편영화였어요. 생활도 어려웠어요. 알바도 하고 그랬어요. 아기도 있었는데 집사람이 돈을 또 버니까.(웃음)"
- 올해 계획은.
이= "올해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비밀의 숲'부터 '감빵생활'까지 극과 극 캐릭터를 보여 드렸잖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새로운 캐릭터를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요. 연애도 하고 싶네요. 내년에 결혼하는 건 좀 이른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 만나야 하잖아요.
정= "결혼은 또 달라. 금방 할 수 있어"
박= "'하던 대로 하자'예요. 그동안 그렇게 쫓아다녀도 한 배역을 안 줬는데 이제 배역이 들어왔잖아요. 선택받은 것도 또 했던 것처럼 기조와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요. 지금의 모든 칭찬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가둬 놓으려고 해요."
정=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아니에요. 하나하나 학습하는 마음으로 여느 해보다 열심히 배우 생활을 하는 게 목표예요.
박= "노래를 배우는 게 어때요. 좋은 클리닉이 많아요. 진심으로 소개해 줄게요."
정= "그럼 하나 더 추가할게요.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보면 어떨까 해요. 노래만 잘하면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아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연습해 보겠습니다.
이= "시작하시죠. 뮤지컬에도 노래 안 부르는 역 많아요."
김진석·이미현 기자
사진=박세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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