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주영.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생소하다.그러나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과 역할을 설명하면 '아 그 배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치즈인더트랩'에서 박해진을 짝사랑해 김고은을 괴롭히는 경영학과 퀸카 남주연 역으로 데뷔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돈을 좇아 사랑을 배신한 재벌집 며느리 아나운서 최지연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최근 종영한 '저글러스'에서는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 도도한 비서이자 사연있는 마보나 역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극 중 백진희(좌윤이)와 대립 관계를 보이다가도, 슬픈 가정사에 눈물을 보이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최근 일간스포츠 사옥에서 만난 차주영은 차분했다. 자기 생각을 술술 털어놨고, 배우에 대한 열정도 넘쳤다. 유타대학교를 졸업하고 늘 마음에 담아두던 배우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늦은 나이에 데뷔라 집안에서의 반대도 거셌다. 이를 무릅쓰고 '하고 싶다'라는 갈망 하나로 몸을 던졌다. '악녀'만 맡아 차가울 것 같았던 그의 이미지에 열정이 더해지자 다양한 색깔의 배우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눈물 연기도 처음이었고, '저글러스' 같은 좋은 현장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선배들과 케미를 맞춘다는 것도 그에겐 큰 가르침이었다. 배워가는 과정들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기대할만한 배우라고 느꼈다.
- 인교진과 찰떡 케미를 선보였다.
"선배님의 넘버원 팬이다. 이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추는 거였는데 정말 매력있다. 정말 영광이었다. 같이 많은 신과 이야기를 같이 풀어나간다는 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센스와 아이디어 넘치고 연기를 할 때도 한 번에 순발력이 바로바로 나더라. 그럼에도 아직 남았다고 하길래 혀를 내둘렀다."
- 극 중 마보나는 정말 성공할 거로 생각하고 조 전무를 도왔을까.
"극 중 조상무 전무와는 애증 관계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조 전무를 동경했고 믿었다. 학벌과 지연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는 조 전무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건 사고가 잦아지면서 안전하지 못하다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 저글러스에서 인교진·최대철·정상호가 중심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세 분의 선배님이 뭉친 건 정말 다행이다. '저글러스'는 주조연이 딱히 없는 드라마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결핍이 있었다. 그 결핍들을 캐릭터에 녹여 조금씩 드러나게 이야기가 펼쳐졌다. 최대철·인교진 선배님도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그걸 맛깔나게 중심을 잡아주셔서 좋았다."
- 여자들의 우정도 보기 좋았다.
"처음에 비서들 이야기라고 들어서 한국판 '악마는 프라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예상했다. 드라마 초반엔 여자 친구들 4명이 중심이었다. 중반부부터 오피스 로맨틱 코미디가 극의 중심이었다. 친구들의 우정이 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극 중 성공이 아닌 우정을 택했다. 실제라면.
"성공에 대한 욕심이 조금이 있다. 실제 20년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있는데 거의 가족이다. 그들은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다 이해해주는 편이다. 그럼 성공을 선택해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믿음이 있다.(웃음)"
- 실제로도 자존심이 센 편인가.
"없진 않다. 쓸데없는데 부리는 건 멋 없는 것 같다. 자존심이 너무 없어도 사람이 맥 빠진다.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닌 걸 말하는 편이다." - 유일하게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없었다.
"원래 시놉시스 상에는 애인이 있었다. 근데 감독님과 작가님이 작품 들어가기 전에 과감하게 뺐다고 하더라. '왜지'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로맨스까지 있었다면 마보나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지더라. 친구이야기부터 조 전무와의 일들, 그리고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대할 떄의 톤 앤드 매너가 다르다. 성공에 다다른 캐릭터가 러브라인까지 있으면 뭐 하나가 안 하느니만 못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 청각 장애 아버지와 대화할 땐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촬영 시작할 때부터 사연을 안고 들어갔다. 심적 압박감이 말도 못 했다. 10화 대본을 받자마자 '올 것이 왔구나' 했고, 다른 분들은 이런 장면이 있을 줄 몰랐기 때문에 '10화는 네 건데 부담되겠다. 잘하라'고 응원차 방문도 했다. 신인인 나에겐 그것도 부담이었다. 그리고 눈물 연기도 해 본 적이 없다. 슬프다고 운는데 보는 사람이 안 슬퍼할까 봐 걱정도 했다. 오로지 '잘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 첫 눈물 연기를 해 본 소감이 어떤가.
"현장에선 정말 슬퍼서 울었다. 한 번에 오케이가 났다. 한 번 더 가자고 하면 못 했을 것 같다. 모니터해보니 슬프게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내 연기를 볼 때 객관성이 떨어졌다."
- 슬픈 감정을 잘 안 느끼는 편인가.
"슬픈 걸 잘 느끼는데 잘 드러내지 않는다. 힘들거나 슬프면 혼자 있는 편이다. 어릴 때 눈물이 많았다. 살면서 매번 울 순 없지 않나. 참는 게 버릇이 된 것 같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익숙해져서 눈물 연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 배우라면 극복해야 할 문제 같다.
"아직 경력이 짧아서 요령이 없더라.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익히들었지만 그게 뭔지 몰랐다. 이번 작품을 그걸 깨달았다. 내가 가진 감정만으로 부족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세상에 많으니까 많은 경험을 해봐야겠다. 상상이나 도움을 받아 스펙트럼을 넓히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어차피 많은 연기를 할 거니까 처음부터 겁먹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수화를 따로 배웠나.
"수화도 배웠다. 어려워서 멘붕이 왔었다. 말을 하면서 수화를 한다는 것도 어려웠다. 선생님도 현장에 왔고, 여러가지로 도움받고 촬영해서 우려했던 것보단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