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선수촌·미디어촌이 밀집해 있는 강원도 강릉의 유천택지지구, 길거리를 지나던 한 시민이 깜짝 놀라 근처에 있던 기자에게 물었다. 각양각색의 아이스하키 유니폼과 대형 국기 망토를 두른 외국인들이 내지르는 떠나갈 듯한 함성소리와 박수갈채 때문이었다. 소음(?)의 진원지는 선수촌 건너편에 위치한 체코 하우스 '체코나라'.
17일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A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세계랭킹 6위 체코가 '최강' 캐나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자, 체코하우스에 모여 응원을 펼치던 체코인들이 흥분의 함성을 내지른 까닭이다. 환한 대낮에 열린 경기였지만 체코하우스 내부에는 꽤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아이스하키를 지켜보고 있었고, 체코의 승리에 쉴 새 없이 맥주를 들이키며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수도 없이 리플레이를 돌려보며 축배를 드는 소리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체코 하우스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 참가국인 체코가 설치한 올림픽 내셔널 하우스(국가 홍보관)다. 원래 내셔널 하우스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나라들이 자국 선수단을 보호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지어진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에도 개최국 한국을 비롯해 약 15개국이 평창과 강릉 일대에 내셔널 하우스를 열었다.
내셔널 하우스에는 선수들과 선수단 관계자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스포츠 외교'의 영향력이 커진 최근에는 양상이 조금 바뀌었다. '국가 브랜드 홍보'라는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됐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내셔널 하우스를 꾸려 자국의 문화를 전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전진 기지'이자, 전통과 문화 소개 및 음식, 특산물까지 경험해볼 수 있게 하는 '미니 대사관'인 셈이다. 평창에 꾸린 오스트리아 하우스, 용평의 스위스 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강릉 올림픽 파크 내에 위치한 코리아 하우스도 올림픽 기간 중 '미니 대사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관광홍보존을 꾸려 전통문화, 한류, 관광 등 인기 콘텐츠를 ICT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고 사진과 파노라마 등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끔 했다. 또 복주머니 접기, 민화 그리기, 한글 캘리그라피, 체질에 맞는 전통차 시음 등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고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벤트 공간도 충실하게 꾸려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셔널 하우스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코리아 하우스엔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체코 하우스다.
체코-캐나다전이 열리기 하루 전인 16일, 이번 대회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동메달리스트인 에바 삼코바(25)가 체코 하우스를 방문했다. 삼코바는 체코 하우스에 모인 체코인들과 여러 방문객들 앞에서 동메달 세리머니를 펼치고 자신이 출전한 경기를 다시 지켜보며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영상편지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삼코바는 체코 하우스에 마련된 기념 벽에 사인을 남겼고, 체코 대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 상품권을 받은 뒤 해당 회사의 모자를 쓰고 생맥주를 직접 따라주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메달리스트와 관중들이 하나가 되어 "나즈드라비(건배)"를 외치며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은 신선 그 자체였다.
체코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까지 자비로 여행을 왔다는 한 체코인은 "메달 색은 관계 없다. 삼코바는 우리의 자랑"이라며 "삼코바가 이곳에 와서 국민들이 자신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감격 어린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코리아 하우스에선 찾아보기 힘든 '파티' 분위기였다.
이처럼 내셔널 하우스는 자국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올림픽 현장을 찾은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 역할도 한다. 네덜란드 하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강릉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안에 설치된 네덜란드 하우스의 이름은 '홀랜드 하이네켄 하우스'로, 12.5유로(약 1만7000원)의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네덜란드 대표 맥주인 하이네켄과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밤마다 EDM의 나라답게 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경기별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 하우스에 모여 자국 선수단을 응원하며 올림픽 분위기를 한껏 만끽 중이다.
네덜란드 선수들 역시 먼 한국까지 찾아와 응원해주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이곳을 찾고 있다. 네덜란드 인기 스포츠인 스피드스케이팅에선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키엘트 누이스(29) 은메달리스트 패트릭 로아스트(23) 등이 이곳을 방문해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제를 즐기다 갔다. 네덜란드 관계자는 "여자 1500m 금메달·3000m 은메달리스트 이레인 뷔스트(32)는 새벽까지 화끈한 뒷풀이를 즐겼다"며 "최고 스타인 스벤 크라머(32)가 1만m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그날 네덜란드 하우스는 폭발했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빌렘 알렉산더 국왕 역시 선수들이 네덜란드 하우스를 찾을 때마다 밤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누며 격려한다고 한다.
내셔널 하우스에 자국 선수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체코 하우스에는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 은메달리스트 에릭 래드포드(33)가, 네덜란드 하우스엔 가나 최초의 스켈레톤 올림픽 대표인 아콰시 프림퐁(32)이 깜짝 등장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처럼 내셔널 하우스는 선수 보호, 국가 브랜드 홍보에 이어 전세계 교류의 장이자 자국민들을 위한 화합의 장까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셔널 하우스들의 '올림픽 장외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뜨겁게 펼쳐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