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05년부터 우익수 이미지가 강했다. 투수 출신으로 강한 어깨를 수비에서 잘 활용했다. 2010년엔 어시스트(보살)가 14개로 메이저리그 전체 우익수 중 1위였다. 통산 외야수로 9902⅔이닝을 뛰었고, 이중 약 75%인 7441⅔이닝(좌익수 1045이닝·중견수 1416이닝)을 우익수로 소화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익수로 소화한 타석(334)만큼 지명타자(294)로 나서면서 수비에선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일시적인 '실험'이 아니었다. 올해 시범경기에선 역할이 지명타자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추신수는 6일(한국시간)까지 소화한 5경기 중 3경기를 지명타자(우익수 2경기)로 치렀다. 대신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잡으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시범경기 팀 최다안타 1~3위 윌리 칼훈·델라이노 드실즈·노마 마자라의 포지션이 모두 외야수다.
포지션별 선수 운영을 볼 수 있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의 뎁스차트에선 칼훈·드실즈·마자라를 주전 외야수로 분류하고 있다. 카를로스 고메스(탬파베이)가 FA(프리에이전트)로 팀을 떠나면서 발생한 중견수 공백을 드실즈가 채우고, 칼훈과 마자라가 코너 외야수를 맡는다. 추신수는 라이언 루아와 함께 지명타자에 이름을 올렸다.
외야수로 가치가 급락했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최근 3년 동안 DRS(Defensive Run Save:수비로 막아 낸 실점)가 -21이다. 2015년 -11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뒤 약간 개선된 모습은 보였지만, 2016년 -4, 지난해 -6으로 여전히 평균 이하다. 통계 전문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DRS -5는 평균 이하(Below Average), -10은 형편없는 수준(Poor)으로 풀이할 수 있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추신수의 DRS는 -3~-11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수비를 하는 게 팀 입장에선 손해라는 의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UZR(Ultimate Zone Rating:팀 실점에 기여한 정도)도 -6.9로 좋지 않았다. 특히 UZR 중 수비 범위를 측정할 수 있는 RngR(Range Runs)이 -4.8이었다. 최근 3년 동안 우익수로 출전한 경기에서의 UZR이 -3.9→-2.2→-6.9다. 세이버메트릭스와 관련된 수비 지표가 모두 마이너스를 찍으면서 활용법에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추신수를 대신해 우익수로 거론되고 있는 마라자의 수비 능력도 평균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마자라(2017시즌 DRS -3·UZR -1)는 추신수보다 열세 살이 어리다. 지난해 20홈런 101타점을 기록한 공격력은 추신수와 비교했을 때 뒤쳐지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칼훈의 등장이 추신수 입장에선 직격탄이다. 지난해 7월 단행된 다르빗슈 유(현 시카고 컵스) 트레이드 때 LA 다저스에서 넘어온 칼훈은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선정한 2018시즌 텍사스 유망주 1위다. 다저스가 숱한 트레이드 제안에서도 지켜냈던 원석. 주포지션이 2루지만, 텍사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좌익수로 전환했다.
지난해 12월 지역 언론인 댈러스 모닝뉴스는 칼훈을 언급하면서 추신수의 트레이드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대가 높다. 마이너리그 수업을 받고 있는 미구엘 아파리시오·레오디 타바레스 등과 함께 팀의 미래로 평가 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빅리그 데뷔를 이뤘고, 시범경기 맹타로 주전 좌익수 자리를 선점했다. 자연스럽게 좌익수 출전 빈도가 높았던 드실즈가 중견수를 맡게 돼 외야수 연쇄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백업 자원인 루아와 드류 로빈슨까지 있어 굳이 추신수에게 외야를 맡길 필요가 없어졌다. 수비 지표 하락과 경쟁자의 등장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최근 MLB닷컴은 2018시즌 추신수를 텍사스 3번 타자 겸 지명타자로 예상했다. 드실즈가 1번 중견수, 마자라가 5번 우익수 그리고 칼훈이 9번 좌익수로 들어갈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렇게 되면 추신수는 '2000만 달러 지명타자'가 된다.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와 헨리 라미레스(보스턴)에 이어 지명타자 중 세 번째로 높은 고액 연봉. 타격에 중점을 두는 지명타자는 추신수에게 다소 어색한 옷이다. 지난해 규정타석을 채운 지명타자 10명 중 추신수는 홈런 9위에 머물렀다. 출루율에 강점을 둔 유형이기 때문에 일발장타를 갖춰야 하는 지명타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텍사스 입장에선 조이 갈로가 3루, 아드리안 벨트레가 지명타자를 소화해주는 게 더 나은 시나리오다.
추신수의 커리어 하이는 2010년 클리블랜드 소속으로 기록한 22홈런과 90타점이다. 30홈런과 100타점을 기대하게 하는 지명타자의 역할은 텍사스가 추신수에게 원했던 부분이 아니다. 추신수 활용법이 애매해진 텍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