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이 아시아를 뒤흔들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3 대표팀은 지난 1월 끝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 나서 기적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던 베트남 축구의 '기적'이었다.
박 감독은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빗대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라 불린다. 베트남 축구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박 감독은 어떻게 '매직'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일간스포츠는 베트남으로 출국을 앞둔 지난 주 박항서 감독을 만났다. 그가 말한 매직의 비결은 복잡하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매직의 출발점이 기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위기의 한국 축구가 배울 점이다. 아시아의 강호라는 위상 그리고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이라는 영광이 자만으로 바뀌어 한국 축구는 점차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 기본적인 시스템과 과정을 무시하고, 대한축구협회장 눈치 보기에 급급한 한국 축구가 발전할리 만무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둔 이 시점에서 한국이 다시 한 번 월드컵의 매직을 꿈꾼다면, 우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중앙일보
◇박항서 매직의 기본
"베트남의 모든 축구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 베트남 축구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박 감독이 기본 중의 기본을 강조했다. 협회, 연맹, 감독, 선수 등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전진한다는 것이다. 바로 베트남 축구의 발전과 성장 그리고 결실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 밥그릇 싸움, 불통 등이 침투한다면 가속도를 낼 수 없다. 2002년 한국대표팀이 그랬듯 지금 베트남이 오직 한 마음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한 시스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박 감독은 선수 선발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으로 치면 기술위원회의 조언을 받기도 한다. 조언을 조언일 뿐 결정은 박 감독이 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도 기술위원장이 있다. 독일 사람이다. 하지만 대표팀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선수 선발은 코칭스태프 회의를 거쳐 확정한다. 이를 협회에 통보하면 협회가 발표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체육 총국이라고 있는데 시스템적으로는 전달자의 역할만 한다. 선수를 선발하는데 누구의 관여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와 상의를 하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이는 간섭이 아니라 서로 협의해서 하는 것이었다. 협회는 나에게 전권을 줬고, 전혀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은 박 감독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박 감독은 "대표팀이 얼마나 지원 받는지 정확한 금액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요구하는 부분은 대부분 지원해 준다. 대표팀이 국가로부터 조금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무 시설 등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 현실로 볼 때 100% 만족스럽다. 엄청나게 잘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배려와 양보도 하나 된 힘을 내기 위해 동반돼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을 향한 대한축구협회의 일방적 강요와는 다른 모습이다.
박 감독은 "프로연맹과 소통을 많이 한다. 특히 스케줄 부분에서 그래야 한다. 서로 양보를 해 준다. 우리가 요구할 건 하고 연맹이 요구를 한다. 우리가 양보해 줄 때도 연맹이 양보해줄 때도 있다. 서로 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지금 베트남의 하나 된 모습이 2002 한국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박 감독은 당시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고, 4강 신화를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
이에 박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2002년에는 한국에서 하는 큰 대회였다. 나는 당시 코치였다. 히딩크 감독님이 협회와 기술위원회에 어디까지 요구했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가장 중요했던 것 선수 선발이었는데 히딩크 감독님이 기술위원회의 통제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비슷한 점을 하나 꼽자면 감독을 향한 신뢰다. 박 감독은 "내가 협회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성적을 내기 전부터 협회는 나에게 신뢰를 줬다. 전권을 줬다"고 밝혔다.
'박항서 매직'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 바로 정신력이다. 베트남 선수들은 투혼과 투지의 정석을 보여줬다. 설렁설렁 뛰는 듯한 인상을 주는 한국 선수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시간이 갈수록 정신력이 약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베트남 선수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베트남 정신.' 박 감독은 이 한 마디로 베트남 선수들의 투혼을 정의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뛴다. 도전 정신, 포기하지 않는 정신, 강한 정신력까지 베트남에서는 이런 모습을 '베트남 정신'이라고 부른다. 이런 모습이 국민들을 감동시켰다"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은 '베트남 정신'을 어떻게 주입시켰을까.
그는 "내 자신부터 감독으로서 솔선수범했다. 베트남 정신을 잊지 않게 훈련장 등 어떤 장소에서도 계속 주입시키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전해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강조할 것이다. 선수들도 따라 줄 것이라 믿는다"고 확신했다.
박 감독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다.
박 감독은 "나의 축구지식과 철학 그리고 노하우로 베트남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다면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다. 내가 기여하고 싶다"며 "나는 지금 베트남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베트남 축구 발전이 내가 할 도리다. 작은 것부터 조금씩 실천해나갈 생각이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연합뉴스
◇박항서가 바라본 한국 축구
박 감독에게 한국 축구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 축구의 어른이다. 즉답은 피한 채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지금 자신의 소속이 베트남이기에 한국 축구에 대한 발언이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한국 축구를 뒤덮었던 히딩크 사태. 박 감독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박 감독은 "그 사태에는 여러 가지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 있었다. 의사 전달 부분에서 오해도 있었다. 그 사태에 관련된 인사들이 모두 협회에서 나간 상태라서 다시 말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쨌든 조금 더 슬기롭게, 지혜롭게 대처를 했어야 오해가 없었을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남겨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답했다.
박 감독은 협회의 신임 집행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프로팀을 봐도 젊은 지도자가 많다. 또 젊은 지도자를 선호한다. 나도 K리그에서 밀려났다. 내 나이 정도 되면 공직에서도 은퇴할 나이다"며 "협회도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불러들여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분들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잘 해주시리라 믿고 있다"고 응원했다.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대표팀을 향한 희망도 숨기지 않았다.
박 감독은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을 준비하고 있다. 신 감독은 굉장히 우수한 지도자다. 그를 믿고 대표팀을 맡겼다. 월드컵을 잘 해낼 것"이라며 "신 감독은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 축구 위상을 높일 생각에 몰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지를 잃어버린 선수들에게도 선배의 진심을 전했다. 박 감독은 "우리 후배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월드컵을 가야 한다.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위기의 한국 축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소개했다.
박 감독은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한다. 위기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축구인들이 직접 풀어야 한다"며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해야 한다. 축구인들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한국 축구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