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언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다' 하면 빠지지 않는 배우가 바로 김상경(47)이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땐 최대한 연예계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누구보다 명확하게 꿰뚫고 있다. 뒤따르는 통찰력은 '끝없는 수다'를 '입으로 써내려가는 인생 이야기'로 탈바꿈 시킨다. 솔직함을 담보로 하는 수다지만 인터뷰를 위한 상투적 내용부터 분위기를 위한 적절한 유머까지, 이런 '기분좋은 선수'가 또 없다.
때문에 김상경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에게 원하는 것도 다 한가지, 바로 '솔직함'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현실적일 때 김상경의 진심어린 미소를 마주할 수 있다. "저 (박)중훈 선배 인터뷰 꼼꼼히 읽었잖아요. 내용 좋던데?" 절친한 박중훈의 취중토크를 정독했다는 김상경은 '씨네타운' 스페셜 DJ를 마치던 날 "낮술하기 딱 좋은 날씨다"며 본인의 취중토크를 예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타고난 재치와 매너, 그리고 상하 구별없는 예의는 수 많은 후배들이 김상경을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 이유다.
작정하고 판을 깔아 놓으니 수다의 내용도, 깊이도 무한정이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지만 던져둔 미끼도 한 가득. "인간관계는 시간이 아니라 밀도라 생각해요. 5~6년 만에 다시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있잖아요." 오가는 술잔 속에 세시간 가량 꽃피운 대화의 장에서 김상경은 와인 한 병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특별히 주량을 세면서 먹어 본 적은 없어요. 함께 마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주량이 바뀐 달까? 몇 시간 만에 취하는 경우도 많아요."
-가장 많이, 오래 마신 기억이 있다면요. "마음에 맞는 사람과는 밤새 마시죠. 술이 좋아서 라기 보다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 거죠.(웃음) 동 틀 때까지 마셨고, 중간 중간 자리를 옮기면서 9차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박중훈 배우 취중토크 기사를 읽었다고요. 지난 인터뷰에서 '나쁜녀석들2' 드라마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고 했죠. "드라마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의무감으로라도 봤어요. 굉장히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셨잖아요. 잘 마치셨으니 다행이죠. 요즘엔 방송이 아니면 라운드 인터뷰만 하게 되는데 이 코너가 남아있으니까 독특하더라고요. 선배 인터뷰 내용이 좋아서 저 역시 응한 이유도 있고요.(웃음)".
-'사라진 밤'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값어치 있는 스릴러'라는 호평도 나왔고요.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좋았어요. 제가 스릴러 장르를 안 해 본 사람이 아니잖아요. 보면 어느 정도 알거든요. 이렇게 빨리 읽히는 시나리오는 굉장히 오랜만이었죠. 훅훅 읽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니까 '뭐야, 이게 뭐지?' 싶어 다시 앞으로 돌아갔죠. 저도 속았거든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간 했던 작품 중 톱3 안에 들 거예요."
-톱1, 톱2는 뭔가요. "당연히 '화려한 휴가', '살인의 추억'? 하하. 그 다음이 '사라진 밤'이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살인의 추억'만큼 와 닿는 시나리오였어요."
-이창희 감독님과 절친이 됐다고요. "사는 동네가 비슷해요. 최근에는 진짜 거의 매일 주구장창 만난 것 같아요.(웃음) 전 이렇게 경제적인 감독을 처음 봐요. 편집한 시간이 10분도 채 안 될걸요? 필요한 장면, 필요 없는 장면이 뭔지 정확히 아는 거죠. 촬영 땐 편하면서도 불안했는데 만족도가 커요."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이에요. "저도요. 라디오 스페셜 DJ를 하면서 영화를 몇 편 추천 했거든요. 제 영화는 하나도 말하지 않아서 '사라진 밤'도 추천 영화로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이창희 감독은 분명 능력 있는 감독이에요. 덩치에 비해 순수하고요. 키가 190cm가 넘으니까. 제가 현장에서 웬만해서는 누구를 우러러 안 보는데 처음으로 고개를 높여 말한 감독이기도 하죠.(웃음)"
-어떤 영화를 추천 했나요. "기회만 있다면 꼭 언급하고 싶었던 '범죄의 여왕'이요. 일부러 말했어요. 기대를 전혀 안 하고 봤는데 예산 규모에 비해 엄~청 재미있었어요. 감독 이름을 대번에 외워 둘 정도였으니까요. 제작비가 10억 안짝이라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관계자) 4억으로 알고 있어요. "4억? 진짜? 대박. 그 미술이 4억으로 나올 수 있는 미술이 아니던데. 웬만한 영화도 그렇게는 못 나와요. 그래서 전 이요섭 감독이 너무 궁금해요. 작품을 보면서 '와, 저 감독 두번째 영화 궁금하다'고 생각한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 이후 이요섭 감독이 처음이에요. 능력자들은 확실히 티가 나요."
-'사라진 밤'도 손익분기점이 높지는 않죠. "32억 들었으니까 140만 명 정도? 이제 영화의 흥망을 가르는 건 배급이라고 봐요. 배급의 시대죠. 영화를 아무리 잘 찍어도,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도 관이 없으면 관객들은 볼 수가 없어요. 그 피해만 안 보면 좋겠네요. 그래서 몇만 들 것 같아요?(웃음)"
-음… 250만 정도로 시작할까요? "그렇지. 현실적이네. 좋아요, 좋아. 여기에서 500만 나왔으면 나 한숨 쉬었을 거야. 하하."
-'1급기밀'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나요. "'온 관'으로만 곳곳에 있었으면 지금보다 누적관객수가 훨씬 높았을 거예요. 엄청 이른 아침 아니면 새벽에나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21만 명도 대단하죠.(웃음) 20만 명 정도 된 영화 중에 평점이 9점대를 유지한 영화는 많이 없어요. '1급기밀'은 그걸 해냈거든요. 그러니 성적이 더 아쉽긴 하죠."
-아무래도 대작이 우선시 되는 현실이죠. "영화에는 종류가 있어요. 어떤 영화는 오로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죠. 예를 들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도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분명 필요한 영화라고는 생각해요. 400~500만 명을 넘겼잖아요. 수요가 있다는 거죠. '1급기밀'은 또 다른 의미로 필요한 영화고요. 그럼에도 볼 기회가 없으니 답답한거죠. 찍다 보면 '된다, 안 된다' 느낌이 와요. 암만 자신 있어도 현실적 문제에 부딪치면 속상할 수 밖에요." -일본 여행은 혼자 다녀온 건가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간 거예요. '1급기밀' 끝나고 도저히 맨 정신에 우리나라에 있기 힘들어서 갔어요.(웃음) 소속사 대표와 같이 떠났다가 혼자 남아 생각을 좀 정리했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회 전반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배우로 유명해요. 소신발언이 많죠. "저도 장사꾼에 굉.장.히. 상업적인 사람이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도 대기업에서 영화 들어오면 찍겠죠. 막내가 이제 8개월 됐고… 으하하하. 그런 생각은 해요. '영화인들끼리 모여서 백날 이야기 해봐야 뭔 소용이냐. 제도적 장치가 없으니까 정작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이 토론이고, 그래서 중요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느 정도는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봐요. 좋은 작품을 하는, 좋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원초적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야 문제제기라도 하고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고요."
>>②에서 계속됩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 사진=김진경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 장소=가로수길 테이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