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을 안고 둥지를 옮긴 선수들이 존재감을 증명했다. 반전 스토리가 리그에 흥미를 돋우고 있다.
지난 겨울 스토브리그는 타의에 의해 팀을 옮긴 선수들이 많다. 다수 베테랑이 FA 시장에서 찬바람을 맞았고,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2차 드래프트도 열렸다. 이름값 높은 선수가 포함됐다. 정성훈과 최준석은 긴 무적 생활 끝에 각각 KIA와 NC의 부름을 받아 극적으로 현역 생활을 연장했다.
김현수(LG) 강민호(삼성) 민병헌(롯데) 황재균(KT) 등 고액 몸값과 화려한 조명 속에 새 출발을 한 선수도 있다. 반면 이들은 향한 기대치는 낮았다. 1군 엔트리 잔류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체로 백업 요원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많다. 정성훈이 대표적이다. 3월 24일 개막전에서 통산 최다 경기(2136경기) 출장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3월 29일 광주 삼성전에선 선발 1루수로 나서 공·수에서 활약했다. 첫 타석 홈런을 포함해 3안타를 기록했다. 2회 수비 땐 박한이의 날카로운 타구를 포구해 더블플레이로 연결시켰다. 이튿날 잠실구장에서 나선 친정팀 LG전엔 3루수로 선발출장했다. 무난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전천후 백업 요원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최준석은 NC의 해결사다.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하고도 팀 내 타점 2위(7개)에 올랏다. 3월 29일 한화전에선 1-1 동점이던 8회말 2사 1·3루에서 심수창을 상대로 결승 스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친정팀 롯데에 비수도 꽂았다. 31일 2차전에서 멀티히트 포함 2타점을 기록하며 10-5 완승을 이끌었다. 2-3으로 패한 3차전에서도 1-1 동점이던 6회에 균형을 깨는 적시타를 때려냈다. 7연패에 빠진 롯데 벤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2차 드래프트에서 LG에 남지 못한 이병규(롯데)와 유원상(NC)도 예년보다 시즌 출발이 좋다. 롯데 외야 백업 요원인 이병규는 많지 않은 타석 기회에서도 결과를 내고 있다. 3월 30일 NC전 9회말 대타로 나서 솔로포를 때려냈다. 홈 개막전에서 완패를 모면하고 뒷심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튿날 2차전에서도 2-3으로 뒤진 5회 2타점 적시타를 치며 경기 흐름을 바꿨다. 매년 잔부상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던 선수다. 올 시즌은 달라 보인다.
유원상은 등판한 5경기에서 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실점이 없다. 피안타는 3개뿐이고 기출루주자 2명의 득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팔꿈치 부상 탓에 제 몫을 못했다. 하지만 2012년 21홀드, 2014년 16홀드를 기록한 투수다. 이미 NC에서 2홀드를 올리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넥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투수 금민철도 KT 선발진의 한축이다. 첫 등판에서 SK를 상대로 5이닝 3실점 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정성훈은 말한다. "한 번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스윙 한 번, 러닝 한 바퀴가 소중하다"고. 최준석의 감량도 비슷한 맥락이다. 고액 몸값을 받는 FA(프리에이전트) 이적생도 예상대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개막 첫 주는 불명예 이적생들의 재기 의지가 더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