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이 모두 사라졌다. 예견된 문제점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봄만큼은 강했던 롯데가 이 시기마저 허덕이고 있다.
롯데는 지난 1일 사직 NC전에선 7연패 뒤 시즌 첫 승을 거두며 반등 발판을 만들었다. 1-2로 뒤지던 8회말 역전을 해냈다. 주장 이대호가 귀갓길에 오물을 맞는 치욕을 당했지만 이를 자극제로 선수단이 뭉쳤다. 그러나 3일 대전 한화전에서 11-17로 완패하며 좋은 기운을 이어가지 못했다. 연승 제물로 적격인 상대에 일격을 당했다. 분위기는 더 침체됐다. 시즌 8패째. 1할 대 승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개막 전까진 전망이 밝았다. 지난해 후반기 보여준 경기력에 기인한다. 58경기에서 39승1무18패를 기록했다. 승률(0.684)은 두산에 이어 2위였다. 삼박자가 맞았다. 평균자책점(3.44) 1위를 기록한 불펜진이 박빙 승부를 이끌었고, 이대호 손아섭 전준우 등 주축 타자들이 번갈아 해결사로 나섰다. 앤디 번즈를 주축으로 구성된 내야 수비도 탄탄했다.
반년 만에 승리 공식을 잃었다. 3일 한화전은 드러난 문제점이 총망라된 경기였다. 선발과 구원진 모두 무너졌고 수비는 헐거웠다. 주축 타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내지 못했다.
초라한 공격력은 개막 첫 주부터 지적됐다. 8경기에서 팀 타율(0.210) 출루율(0.286) 장타율(0.307) 득점(24점) 홈런(3개)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다. 6득점 이상 기록한 경기가 없다. 문제점은 명확하다. 주축 선수들이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조원우 감독도 "해줘야 할 선수들이 침묵하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 기간 동안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고졸 신인 한동희(0.286)다.
'대들보' 이대호의 부진이 공격력 저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개막 8경기에서 타율 0.226·3타점에 그쳤다. 해결사 본능이 깨어나지 않았다. 지난해는 팀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를 친 선수다.
좋은 흐름을 끊는 장면도 있다. 한화전도 그랬다. 롯데는 2-11, 9점 차로 뒤진 4회초 공격에서만 8득점 하며 1점 차까지 추격했다. 구원투수 구승민이 4회말을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역전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진 공격에서도 손아섭이 안타를 친 뒤 2루 베이스를 밟으며 동점 주자가 됐다. 그러나 이대호가 해결하지 못했다. 2년 차 신인급 투수 박상원의 슬라이더-속구 조합을 공략하지 못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앞선 세 타석에서 안타가 없었다. '나올 때가 됐다'는 기대 속에 나섰지만 범타로 물러났다.
SK와의 개막전과 오버랩이 된다. 4-5로 뒤지던 롯데는 7회초 1사 1·3루에서 더블스틸에 성공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주자를 3루에 두고 이대호가 나섰지만 삼진으로 물러났다. 7회말 김동엽에게 결승 홈런을 맞고 패했다. 7연패의 시작이었다. 한 타석 결과를 탓할 순 없지만 이대호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FA(프리에이전트) 영입 효과도 미미하다. 롯데 프런트는 프랜차이즈 포수 강민호를 삼성에 내준 뒤 공격적인 투자로 외야 최대어 민병헌을 영입했다. 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외야진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도 시즌 초반 부진하다. 9경기에서 타율 0.257를 기록했다.
장타 생산 능력이 아쉽다. 홈런 없이 2루타만 한 개다. 타선이 침체됐을 땐 주축 타자의 장타가 절실하다. 분위기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 롯데를 떠난 강민호(삼성)과 황재균(KT)은 갖추고 있는 능력이다. 민병헌의 홈런 생산은 연평균 13.5개. 영입 당시에도 투자 대비 효율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아직은 효과가 없다.
'타격엔 사이클이 있다', '클래스가 있으니 곧 회복할 것이다'는 상투적인 속설로 위안 삼을 시점이 아니다. 3~4경기 승차를 만회하려면 통상적으로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이제는 롯데 주축 타자들이 몸값과 이름값을 할 때가 됐다.
더 큰 문제는 마운드다. 롯데가 15점 이상 내준 건 지난해 6월 8일 NC전 이후 처음이다. 선발 김원중이 7점, 구원진이 10점을 내줬다. 선발투수가 무너져도 구원진이 버텨내면 승리를 노릴 수 있다. 실제로 이날 롯데 타선은 모처럼 터졌다. 하지만 불펜진이 거듭 실점하며 추격 동력을 잃었다.
그나마 선발진은 상황이 낫다. 박세웅이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5인 로테이션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불펜진은 지난해 필승조던 조정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그 자리에 대신 나선 장시환은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2.46, 구승민은 7.20을 기록했다.
박진형과 손승락은 리드를 지킬 수 있는 투수다. 문제는 그 앞이다. 안정감을 주는 선수가 없으니 보직을 부여하기도 어렵다. 두루 기용하며 시험을 이어가지만 안 좋은 결과도 동반된다. 보직을 갖지 못한 투수들은 등판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다. 악순환이다. 조무근, 노경은, 윤길현 등 다른 자원을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현재 1군에 있는 선수보다도 준비가 덜 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는 등판할 투수를 쉽게 예측할 수 있던 팀이다. 올해는 선수 한 명의 부재를 절감하고 있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 수비도 집중력을 잃었다. 안방과 내야가 총체적 난국이다. 수비 능력을 인정받아 재계약한 번즈는 벌써 2실책을 기록했다. 신인 한동희는 5실책이다. 3일 경기에서는 다리 사이로 공을 빠뜨렸다. 역전패 빌미가 된 3월 28일 두산전 실책과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이순철, 허구연 등 야구 전문가들도 수비력을 인정하는 선수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 빠른 타구 속도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한 타석에 내세우는 대타 요원은 2~3명씩 두면서까지 내야 백업 김동한을 2군에 내려야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강민호의 부재는 예상대로 난항이다. 나원탁과 나종덕, 젊은 포수 2명으로 개막 엔트리를 짠 롯데는 현재 김사훈까지 콜업해 3인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1승이 절실하다 보니 경험이 조금이라도 많은 포수를 보험으로 두겠다는 의지다. 풍부한 대타 자원을 포수 타석에 내세워 활용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1점을 짜내야 할 때나 효과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안방이 안정감을 줘야한다. 그런데 현재는 육성도 실리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 강민호를 놓친 프런트의 실책도 시즌 초반 부진에 한 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