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팝의 여왕’ 케이티 페리(34)는 유난히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다. 여성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2010년 발매된 2집 ‘틴에이지 드림(Teenage Dream)’의 수록곡 5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리고, 지난해 8월에는 트위터 팔로워 1억명을 돌파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슈퍼스타지만 한국에서는 절친 리아나나 레이디 가가에 비해 ‘낯선’ 팝스타였기 때문이다. 2001년 데뷔 이후 첫 방한까지 17년이 걸린 것도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가 한몫했을 것이다.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위트니스 더 투어(Witness: The Tour)’는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충분했다. 지난해 6월 발매된 정규 4집 ‘위트니스’를 기념해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해 오는 8월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전 세계 90개 도시를 도는 대장정에 이름을 올린 서울은 예매 10분 만에 1만5000석이 매진됐다. 페리는 밀당의 고수답게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110분간 쫄깃한 공연을 이어갔다. 총 6부로 구성된 공연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했다. 눈 모양의 화면이 전체 무대를 관통하는 가운데 1부 ‘성명(Manifesto)’에서는 ‘위트니스’ ‘룰렛’ 등 신곡으로 지금의 자신을 규정하고, 2부 ‘회고(Retrospective)’에서는 예전 히트곡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의상과 영상도 무대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타이트한 레드 수트에 족두리를 쓰고 등장한 페리의 의상이 화이트 체크무늬 수트로 바뀌면 같은 패턴의 리프트 무대가 올라왔다. 페리가 착용한 브라톱은 ‘HOT’ ‘COLD’ 등 노래 가사를 비추며 그 자체로 전광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공수된 무대 장비만 100t에 달한다”는 주최 측의 설명처럼 매 곡마다 새로운 무대 장치가 등장했고, 백댄서 의상도 곡마다 바뀌었다. 이들은 TV 모양 탈을 뒤집어쓰고 그로테스크한 춤사위로 흥을 돋웠고, 무대 위에 피어난 대형 장미를 봉 삼아 폴댄스를 선보이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다채로운 무대를 이끌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뽐내는 페리의 라이브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 것이다. 직접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남다른 해석과 감각적인 연출로 단순히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 팝의 여왕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지난해 내한 당시 각각 무성의한 무대와 립싱크로 논란을 빚은 아리아나 그란데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달리 페리는 소통과 교감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팬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인투 미 시 유(Into Me See You)’를 부른 그는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가 아는 한국어가 많지는 않다”고 했지만, 히트곡 ‘핫 앤 콜드(Hot N Cold)’를 어떻게 발음하냐고 묻더니 “뜨겁다 추워”라고 답하거나 ‘아이 키스드 어 걸(I Kissed A Girl)’을 “여자랑 키스했어”라고 소개하는 등 꽤 많은 한국어를 선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국식 하트’라 칭하며 연신 손가락 하트를 보내기도 했다.
2015년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 이후 페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레프트 샤크(Left Shark)’도 등장했다. 당시 백댄서로 등장한 왼쪽 상어는 훌륭한 안무를 선보인 오른쪽 상어와 달리 어설픈 모습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페리는 “오른쪽 상어를 찾는다”며 상어 의상을 입고 온 한국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내 포옹하고 셀카를 찍었다. 이날 공연장에는 상어를 비롯해 페리의 무대 의상이나 핼러윈 의상을 코스튬플레이하고 온 관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일부 해외 공연에서 “특별한 의상 덕분에 ‘팬미팅(Meet and Greet)’ 추가 당첨 기회를 얻었다”는 후기를 보고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한 의상을 준비한 것이다. ‘성적 탐구(Sexual Discovery)’와 ‘자아성찰(Introspective)’을 거쳐 ‘부상(Emergence)’으로 이어진 공연은 앙코르 무대까지 완벽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손 모양의 거대한 석고상 위에서 ‘파이어워크(Firework)’를 부르며 작별을 고했다. 비록 셋리스트(선곡표)에서 한두곡이 빠졌다고 섭섭해하는 팬들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오랜 갈증을 풀기엔 충분했다. 그보다는 진정성 있는 소통이 보여준 감동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라스트 프라이데이 나이트(Last Friday Night)’를 진짜 금요일에 들은 건 아시아에서도 서울과 홍콩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