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차길진의 갓모닝] 688. 서울의 공기
얼마 전 미세먼지 농도가 경보 발령 기준인 300㎍/m³를 넘어서자 예정됐던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됐다. 잠실·인천·수원에서 열리기로 했던 경기가 취소되자 수만 명의 관중은 허탈해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재 기준에 의하면 앞으로 미세먼지로 인한 경기 취소는 자주 발생할 듯싶다. 문득 1988 서울올림픽 무렵이 떠올랐다. 당시 서울 공기는 중국 심양, 이란 테헤란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나빴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산업화로 서울 안에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서울은 아침만 되면 짙은 스모그가 껴 있었다. 한강에는 물고기 떼 시체가 빈번하게 떠올랐다. 올림픽에 참가한 외국 선수들은 서울의 공기가 너무 나빠서 연습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항의했다. 특단의 조치로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공장 가동률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일부 지점에서 초미세먼지가 m³당 400㎍까지 측정됐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다. 2004년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333㎍/m³나 되는 날도 있었다.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의 약 50%인 167㎍/m³ 정도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공기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단지 공기가 나쁘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는 현재보다 훨씬 나쁜 공기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기에 대한 경각심도 없었고, 이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 비밀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국민들은 아침에 출근하기 전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고 마스크를 준비한다. 최근 환경부가 초미세먼지의 24시간 기준치를 50㎍에서 35㎍로 강화했다. 예전에는 보통 수준이던 공기가 나쁨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국민들도 더욱 조심하게 됐다.
미세먼지는 패션도 유행시키고 있다. 바로 마스크다. 과거에는 겨울이나 감기 환자들이 사용했던 마스크가 국민 패션이 됐다. 마스크의 색깔도 다양해지면서 일명 연예인 마스크로 불리는 블랙 마스크가 단연 인기 품목이 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한 지인은 마스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연예인처럼 보인다며 웃었다. 특히 연예인들이 많이 하고 다니는 블랙 마스크를 낀 사람만 보면 ‘혹시 연예인인가?’ 하는 생각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본다고 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지하철·편의점·버스 정류장·은행 등 곳곳에 달린 CCTV 덕분에 하루에 1인당 50~70번 카메라에 찍힌다고 하니, 누구나 비공식 공인인 셈이다.
얼마 전 성대 수술을 받은 뒤라 나 역시 미세먼지를 최대한 피하고 있다. 그러나 기다리던 프로야구 경기마저 취소해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미세먼지에 관한 조치는 여러 제반 사항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가 지난 1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일환으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대중교통을 무료화해 150억원 정도의 세금을 사용하자 찬반양론이 날카롭게 부딪친 바 있었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프로야구 경기가 중단되고, 시민들이 외출마저 주저하는 상황이 되면 소상공인들 또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부터 시달려 왔던 미세먼지 사태지만, 중·장기적인 계획과 함께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국민의 마음이 더해진다면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