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을 피했더니 '오역'이 따라왔다. 주목도가 높은 만큼 작은 논란도 큰 후폭풍으로 불어닥치는 모양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 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에 돌파하는 등 역대급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역'에 대한 지적도 높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마블의 10년 히어로 역사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지난 25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하자마자 매일 신기록을 쓰며 브레이크 없는 흥행 질주를 펼치고 있다. '기다리고 기대한 만큼 대단한 영화'라는 호평이 지배적이지만 일부 관객들은 "번역이 영화를 100%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며 불쾌한 심경을 표출하고 있는 것.
오역 논란은 개봉 당일부터 불거졌다. 영화 후반부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부터 지적됐다. 체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최종 단계야" 혹은 "마지막 단계다"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을 "이제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하면서 스토리를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닥터 스트레인지의 캐릭터 성격까지 뒤바꿔 놨다는 비난이다.
또 강렬한 뉘앙스가 담긴 닉 퓨리의 대사를 "어머니"로 단순 표기하면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토르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과 만난 이후 타노스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타노스가 내 백성의 반을 죽였다"는 대사 역시 자막으로는 처리되지 않았다. 이에 관객들은 아스가르드인 전부가 죽은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
개그와 유머 대사도 대부분 삭제하면서 마블 히어로 영화 특유의 재미를 앗아 가기도 했다. 관객들은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번역했다간 3차대전 일어나지' '절반이 오역이네. 대체 무슨 영화를 본 걸까' '영어 공부하라는 빅픽처' '제발 번역가 좀 바꿔 주세요' 등 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번역은 마블 시리즈 작품을 다수 작업한 박지훈 번역가가 맡았다. 박지훈 번역가가 번역을 맡은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오역 논란이 불거졌지만 해프닝 수준으로 넘겨졌던 것이 사실. 하지만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결국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터진 것으로 보인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측은 개봉 전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며 이에 대한 걱정을 조심스레 드러냈다. 개봉 이후 2300개가 넘는 영화관을 싹쓸이한 것도 사실이지만 수익을 내야 하는 극장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전진 배치시켰고, 관객들 역시 '기다렸다' '볼 영화가 없다' '스크린을 다 잡아도 매진이다'는 이유로 눈감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관객들의 분노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고, 외신에서도 번역 오류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에는 사태의 스케일이 다소 커졌다. 현재까지는 논란에 대한 대책도 없고 자막을 변경할 계획은 더더욱 없다는 입장이다. "해석과 해설의 차이가 있지만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또 4편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를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빵빵 터지고 있는 흥행력 역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측을 굳이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1000만 관객 돌파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오역 논란은 씁쓸한 오점이 됐다. 이후 번역가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관객들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는 '마블의 오만함'으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