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자에서 국내 최대 격투기단체 로드FC 수장으로 변신한 김대환 대표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최근 서울 논현동 로드FC 체육관에서 만난 김 대표는 멀리서 봐도 격투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쪽으로 휜 콧등 때문이다. "코가 정확히 6번 부러졌어요. 처음엔 콧대를 바로 세우려 했는데, 자주 다치다보니 아무리 세워도 함몰되더라고요. 익숙해진 거죠. (웃음)"
올해부터 로드FC 대표직을 수행 중인 그는 취임 후 첫 해외 대회 참석을 앞두고 있다. 로드FC는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샤오미 로드FC 047 대회를 연다. 무제한급 8강 네 경기가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경기다. 김 대표는 "처음이라 떨린다"면서도 "대표직을 맡으면서도 어려움을 겪을텐데, 여러 번 경험하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세대 격투기 키드
김대환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주한미군 방송인 AFKN에서 프로복싱과 미국프로레슬링(WWE) 중계를 보고서 격투기에 빠졌다. 당시엔 보기 드물었던 1세대 격투기 키드였던 셈이다. "지금은 전설인 된 타이슨과 헐크 호건의 화려한 경기를 보면서 단번에 빠져들었어요. 그때는 편성표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매주 토요일 무작정 TV 앞에 앉아 호건이 등장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낮엔 어린이 신문·잡지를 뒤져 가면서 '타이슨 주먹이 몇 톤이고, 목둘레는 몇 cm'라는 기사를 스크랩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70cm·70kg였던 그는 TV로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본격적인 격투기 배우기에 나섰다. 중2 때 합기도 체육관을 처음 찾아간 것을 시작으로 유도·킥복싱·종합격투기 등 다양한 격투기를 섭렵했다. 그는 "운동을 배우러 체육관을 다니면서 왜소한 체형을 가진 격투기의 고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운동을 하면서 겸손한 마음도 배웠다. 또래보다 덩치가 컸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친구들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격투기에 빠져살았지만,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전 충남고 시절 내내 시험 점수가 5등 안에 든 그는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에 입학했다. "말그대로 낮엔 격투기 배우고 밤엔 공부하는 '주격야독'이었습니다. 건설회사를 다녔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이공계 학과를 염두해두고 공부를 했는데, 적성과 잘 맞지 않았거든요. 문과로 바꾸고 3수 끝에 대학 문턱을 밟았습니다."
◇인기 해설자, 영어 인터뷰 하고 펀치도 날렸다
그는 대학 시절 전공보다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외국인 교수의 영어 강의만 골라서 들었다. 영어로 레포트를 작성하느라 매번 수일간 낑낑대기 일쑤였다. "1학년 때 맞았던 학사 경고를 두 차례가 제대 후엔 뼈 아프게 돌아왔어요. 이런 가운데 영어 하나는 잘 하고 싶었더라고요. 그래서 원어민 수준의 실력을 가져야 따라갈 수 있는 강의에 도전했습니다. 3년간 목숨을 걸고 영어만 판 셈이죠. 덕분에 비싼 돈 들여 미국 유학을 다녀온 효과를 거뒀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두 번 다신 못할 짓이죠.(웃음)"
2003년은 김대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의경 복무 제대 직후 한 케이블 방송의 격투기 해설자 공개 오디션에서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거친 김대환은 단기간에 인기 해설자 반열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쌓은 해박한 지식은 격투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대학 시절 공부한 영어도 도움이 됐다. 중계방송 중 외국 선수들의 인터뷰를 동시 통역하는 김대환이 유일했다. 당시 국내에서 격투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을 선봉으로 격투기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대환은 용돈벌이로 시작한 해설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격투기 인기가 워낙 좋다보니 중계도 10년간은 안정적으로 될 것 같았다. 원래는 대기업 입사가 목표였다. 그런데 고민 끝에 제일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나 격투기 전성시대는 금세 저물었다. 방송사들이 차례로 중계를 포기하면서 김대환을 찾는 곳도 줄어들었다. "시한부 인생처럼 사니까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수입이 없다보니 대학생 때처럼 번역 아르바이트 하고 대치동 학원가에서 영어 강사로도 일했어요. 격투기 중계가 다시 안정기 접어들기까지 몇 년간은 그렇게 버텼는데, 그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심도있는 해설을 위해 2012년엔 체육관을 차렸고, 1년 뒤엔 직접 링에 오르기도 했다. 김대환은 10전의 파이터다. 2013년 영국 이스트코스트파이트팩토리(ECFF)가 주최한 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뒤 9승1패를 기록 중이다. 그는 "해설자 관점에서 보면 운동신경이 특출한 것도 아니고 경기가 화려하지도 않다. 참 재미없게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라면서도 "그래도 펀치 한 방은 있다. 지독한 노력파"라고 자평했다.
◇로드FC 수장, 격투기 대중화 꿈꾼다
김대환은 올해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정문홍 전 대표의 부탁으로 국내 최대 격투기 단체 로드FC의 대표직을 맡았다. 정 대표는 오랜 해설자 생활로 다져진 격투기계에 대한 이해도, 직접 파이터로 나설 만큼 넘치는 열정 그리고 유창한 영어 실력까지 갖춘 스펙을 높게 평가했다. 대표직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중하게 거절했다. "정 대표님이 저를 처음 부른 건 3년 전이었어요. 후임이 돼 달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너무 놀라서 손만 가로지었죠.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까'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재 잘 하고 있는 해설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러던 중 정 대표의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 15년간 격투기를 통해 받은 사랑 격투기로 보답하라'고 하셨어요. 생각해보니 백번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더 이상은 거절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수락했습니다." 김대환 대표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여러가지 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하나만 꼽아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격투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격투기를 직접 즐기고 재밌게 보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