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에 열린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선 총 105명의 선수가 선택 받았다. 10개 구단이 10라운드까지 각각 1명씩. 그리고 신생팀 KT가 1라운드 종료 후 5명의 선수를 특별 지명했다. 배재환(NC·1라운드 1번) 고영표(KT 1라운드 10번) 양석환(LG 3라운드 28순위) 등이 그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지원자 720명 중 14.6%가 웃었다. 하지만 김호재는 달랐다.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에겐 2013년 8월은 '아픔'이다.
삼성 내야수 김호재의 야구인생은 굴곡 그 자체다. 장충고를 졸업하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일종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대학 진학도 생각했지만, 프로 입단이 우선 순위였다. 마침 삼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명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했던 건 아니다. 지명식이 다 끝나고 삼성에서 연락이 왔다. 프로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계시더라. 올 생각 없냐고 해서 바로 '가겠다'고 했다.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2014년 삼성 육성선수가 됐다. 하지만 1군 데뷔는 뜻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의 선수층은 그만큼 두터웠다.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2015년 10월 결단을 내렸다. 바로 현역 입대했다. 김호재는 "그때 장태수 2군 감독님께서 어린 나이에 다녀오는 게 좋다고 하셨다. 고민 없이 갔다"고 말했다. 서울 독립문 쪽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제1경비단에서 군생활을 시작해 2017년 7월에 만기전역했다. 선수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경찰야구단이나 상무야구단과 비교했을 때 환경도 열악했다. 고참이 되기 전까진 야구를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병장 때 캐치볼을 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그는 "병장 때 일병 중에 박찬호(KIA)가 있었다"고 전했다. 박찬호는 장충고 시절 함께 키스톤 콤비를 맞췄던 2루수 자원.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장충고 졸업반 중 유일하게 프로 지명을 받았다.
군대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입대 전까지 63kg이었던 몸무게가 제대 후 75kg까지 늘었다. 자연스럽게 힘이 붙었다. 김호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몸무게가 59~60kg 정도였다. 그런데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몸이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어 "팀에 돌아와서는 적응이 잘 안 됐다. 특히 수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계속 공을 받으니까 익숙해지더라. 교육리그를 다녀오면서 컨디션이 좋았는데, 오락가락하던 타격이 2군 개막하기 바로 직전에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성적이 '기회'를 만들었다. 2군 스프링캠프에서 타격폼을 간결하게 가져가면서 콘택트 능력이 좋아졌다. 2018시즌 2군 성적은 타율 0.343(102타수 35안타), 1홈런, 12타점. 결국 22일 정식선수 등록과 함께 1군에 콜업됐고, 곧바로 KBO리그 데뷔전까지 치렀다. 그는 "TV로 보던 선수들과 함께 뛰어서 영광이었다. 꿈의 무대를 밟은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입지는 좁다. 김상수가 부상에서 회복되면 2군에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김호재는 "상수형은 내가 본 선수 중에서 마인드가 정말 좋다. 첫 경기를 나서기 전에도 '긴장이 되겠지만 공 1개 오면 몸 풀릴 거다. 걱정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며 "난 하루살이 아닌가. 여기(1군)서 많이 배워 (2군에 내려갔을 때) 잘 만들어서 다시 오는 게 내 위치에 맞는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꿈 같은 시간이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편견을 깼다. 그는 "프로에 육성선수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1,2년 안에 잘릴 거다' '네 체격으로는 야구 못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텼고, 정식선수가 되니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목표는 소박하다. 김호재는 "부상 없이 항상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프로 미지명 후 육성선수 입단 그리고 현역 복무까지 한 김호재의 버라이어티한 야구인생은 이제 출발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