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발 '뒷돈 트레이드'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다. 히어로즈가 지난해 KT, NC와 트레이드를 진행하면서 KBO에 공시하지 않은 '뒷돈' 5억 원과 1억 원을 각각 받은 사실이 지난 27일 드러났다. KBO는 이 6억원을 야구발전기금으로 환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전 트레이드에도 현금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난감해진 각 구단 단장들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과거 히어로즈와의 이면 계약 트레이드를 자진 신고하기로 결의했다. 히어로즈가 2009년 이래 진행한 트레이드 23건 가운데 12건을 통해 뒷돈으로 총액 131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K를 제외한 8개 구단이 모두 히어로즈와 남몰래 금전 거래를 했다.
공식적으로 현금을 포함시켰던 트레이드 4건조차 금액을 축소해 발표했다. KBO가 히어로즈에 현금 트레이드 금지령을 내렸던 2010년에도 두 건을 통해 39억 원을 챙긴 사실이 공개됐다. 돈을 건넨 8개 구단도 공범이지만, 이 모든 트레이드에 한꺼번에 연루된 히어로즈가 '주범'인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히어로즈로선 할 말이 없다. 가뜩이나 구단 창립자인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사기와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있는 데다 1군 주축 선수들이 시즌 도중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각종 위법 및 편법 행위까지 차례로 적발되면서 구단의 명예와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KBO도 더 이상 히어로즈와 다른 구단들의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8개 구단의 자진 신고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의 현금 흐름을 더 자세하게 조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넥센 구단은 '뒷돈' 거래가 들통난 뒤 "관련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트레이드 관련 자료를 재검토해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KBO 특별조사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2016년 검찰 조사 과정에서 구단의 모든 서류가 제출됐다. 그 안에는 트레이드 관련 자료도 있으니 그대로 제출해 일말의 의혹을 남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팬 여러분과 KBO 리그 관계자 모든 분께 실망과 불편을 끼쳐 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진실한 반성과 함께 강력한 내부점검으로 재발 방지에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입장 발표 직후 8개 구단의 양심 선언이 이어졌다. 넥센의 단호한 각오는 도리어 민망해졌다. 각종 의혹이 지워지기는커녕 의심에 더 불이 붙었다.
넥센의 입장은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KBO는 지난 2016년 법률·금융·수사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구단 혹은 선수가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위원회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규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제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심지어 이 조사위원회에 KBO 고위 관계자까지 포함시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관련 조사에 넥센 구단이 '적극 협조'하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의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넥센의 공식 사과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져 있다. 박준상 대표이사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법정 구속 이후 넥센은 지난 2월 박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전 대표이사를 장막 뒤로 물러나게 하고 새 얼굴을 앞장세웠다. 박 대표는 1972년 서울 태생으로 미국 더 낙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이후 대우 국제금융팀, 안랩 기획팀장, 아서디리틀 코리아 지사장을 거쳐 히어로즈 부사장을 맡아왔다.
넥센은 새 대표 선임을 발표하면서 "박 대표는 앞으로 구단이 직면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팬, 스폰서, 관계사들과의 신뢰 회복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구단의 지속적인 경영성과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구단의 '얼굴'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다. 고형욱 단장과 장정석 감독, 구단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포화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야구 팬 앞에 구단의 진정성을 담은 계획도 제시하지 못했다. '구단의 지속적인 경영 성과'와 '팬, 스폰서, 관계사와의 신뢰 회복'에 치명타가 되는 사건이 줄줄이 터지고 있는 데도 말이다.
전 대표이사가 사상 초유의 불법 행위로 실망을 안기고 현 대표이사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동안, 선수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며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하고 있다. 간판 선수부터 백업 선수까지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빈다. 선수들이 '야구'로 지켜낸 히어로즈의 자존심과 존재 가치를 구단 수뇌부가 땅으로 끌어내리는 모양새다.
사고를 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히어로즈의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