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TV에서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를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한국마사회 유도팀 감독 이경근입니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목전에 둔 아끼는 동생이자 후배인 (신)태용이에게 응원 한마디를 하고자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유도인들이 꿈꾸는 곳이 올림픽이라면 축구 선수와 감독에겐 월드컵이 꿈이겠죠. 그 꿈의 무대가 주는 긴장과 부담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몇 자 적어 봅니다.
태용이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노력하는 자에겐 반전의 기회가 온다'는 겁니다. 한국 축구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3전 전패를 당할 거라는 말도 나오더군요. 안 그래도 전력이 약한데, 주요 선수들의 부상까지 겹쳤기 때문이라죠. 그러나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일들을 아쉬워할 시가가 아닙니다. 앞으로 할 일만 생각해야 해요. 아쉬워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서울올림픽 당시 금메달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남자 유도 65kg급엔 일본의 야마모토와 소련의 소콜로프, 프랑스 카라베타 등 강자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입니다. 신태용호처럼 월드컵에서 독일·스웨덴·멕시코와 같은 팀들은 만났으니, 우승은 커녕 메달을 딴다는 보장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날 내가 아니었죠. 열심히 했는데도 메달을 못 따면 '하늘의 뜻'이겠구나 하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운도 따른다고 믿었거든요. 놀랍게도 야마모토와 소콜로프가 일찌감치 탈락했어요. 카라베타와는 치열한 싸움 끝에 이겼고요. 정신력은 축구에도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저평가와 강자들을 이겨내려면 평정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태용이는 강한 승부 근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구만 쳐봐도 태용이의 승부욕을 알 수 있어요. 제가 당구를 300점 치는데, 200점인 태용이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이기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으니까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이야기지만, 한 번 이기고자 마음 먹은 상대는 반드시 잡고 마는 승부사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화는 또 있습니다. 2010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한국-벨기에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태용이 집에서 경기를 같이 봤는데요. 태용이가 평소와 좀 다르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혼자 경기를 보며 감독이 된 것처럼 전술을 짜고 고민하더라고요. 저한테 '형, 벨기에 A와 B 선수가 한국 C 선수를 공략할 것 같은데, 내가 감독이었다면 다른 선수를 기용할 것 같다'고 했는데, 거짓말처럼 A와 B가 찬스를 만들어내더라고요.
90분 내내 자리를 뜨지 않더라고요. 내가 '화장실도 안 가고, 정말 지독하다'고 핀잔을 줄 정도였죠. 벨기에전이 끝나고 태용이가 나를 보며 '내가 감독이 되면 잘 할 수 있을텐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태용아, 너는 잘 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다. 쉬운 상대 없었던 리우올림픽과 20세 이하 월드컵을 잘 헤쳐나갔 듯, 끊임없이 연구하는 너라면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야.
태용이는 지금도 '한 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 후배(이경근 영남대 81학번, 신태용 영남대 88학번)이기도 한 그와는 통화도 자주하는 편인데요. 최근 한창 대표팀에 여론이 좋지 않을 때 태용이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습니다. 걱정하는 저를 향해 태용이는 대뜸 '제가 야유를 받고 있는 것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테스트를 하는 과정이에요. 현재 결과에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며칠 뒤 온두라스를 상대로 2-0 완승을 거둔 후엔 "기쁘지만, 방심할 때가 아니다. 월드컵에선 더 강한 팀을 만날테니까요"라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더군요. 조금의 동요도 없는 모습에 같은 지도자라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태용이가 서울올림픽 때 저처럼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고를 칠 줄 아무도 몰랐잖아요. 오히려 비판과 비난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태용호도 16강, 혹은 그 이상의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형이 예상을 뒤엎고 금메달을 따낸 것처럼, 태용이도 잊지 말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다오. 태용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