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연기였다. 포기한 것도 여러 번. 호주로 떠나 페인트 칠까지 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놓지 못한 연기의 끈이다. 타고난 운명은 무시할 수 없다. 무명 세월이 아무리 길었어도 김희원(47)이 있어야 할 곳은 무대 그리고 현장이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렇게 버텨낸 전쟁터에서 김희원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대표작까지 품게 됐다. 배우 김희원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아저씨(이정범 감독·2010)'와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팬덤 현상을 불러 일으킨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2017)'은 김희원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명작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김희원에게 '친근함'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예능 프로그램은 옵션 선물이다.
"뭐 예상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일약 스타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며 껄껄 웃는 김희원은 '더 많이 달리고,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는 포부와 겸손함을 여러 번 내비쳤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우침은 김희원을 일희일비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여전히 많다. 주연급으로 올라선 만큼 남다른 책임감과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김희원 인생에 '자만심'은 다소 먼 단어다. 후배들에게도 사기를 꺾지 않는 선에서 몸소 체득한 세월을 아낌없이 털어 놓는다. 츤데레 성격이 빛나는 유머러스한 선배. 알면 알 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는 배우 김희원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학창시절은 어땠나. "난 모범생은 아니었다. 소위 말해 공부 안 하는 문제아였다. 공부 안 하고 땡땡이 치고 당구장 놀러 가고 그랬다. 공부에 취미가 전혀 없었다. 책은 거들떠도 안 봤다. 학교 가면 자기 바빴으니까. 반에 한 명씩 공부 못하는 애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지 않나. 그게 나였다. 애들하고 놀 생각만 했다."
- 지금은 책을 좀 읽는 편인가. "어렸을 때보다 지금 더 많이 본다.(웃음) 그 때는 책을 자는 용도로만 썼는데 지금은 하루에 한, 두권은 읽는 것 같다.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진짜 책을 읽는다. 과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보는 수준이다."
- 시나리오 읽기도 바쁠 것 같은데. "시나리오가 그렇게 많이 들어오면 난리나지. 이렇게 인터뷰 할 시간도 없다. 하하. 진짜 유명한 분들은 '충무로에 도는 모든 시나리오가 나를 거쳐갔다'고 하는데 난 내 평생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쌓아둔 시나리오? 어디가면 볼 수 있나.(웃음) 책은 연극을 시작하면서 '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 여전히 악역 꼬리표가 있지만 조금씩 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순하고 착한 역할도 나름 많이 했다. 묻혀서 그렇지.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방탄유리야' 대사가 기억되고 있는걸 보면 진짜 세긴 셌던 것 같다. 다른 영화가 개봉해도 댓글에는 늘 '방탄유리'가 빠지지 않는다."
- '불한당' 전과 후가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너무 고마운데 부담감도 엄청나다. 어쩌다 보니 열성팬이 생겼다. 지하철 광고를 내 주시더라. 하하. 예전에는 '연기만 열심히 해야지' 싶었는데, 지금은 팬 분들이 '이런 것도 해주세요. 저런 것도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시니까 작품을 고를 때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다."
- 영화에 대한 관심이 배우 개개인에게 이어지고 있다. "'다음 영화는 뭐예요?'라고 물어 볼 때마다 '임팩트 있는 역할을 잘 해야 할텐데 어떡하나' 싶다. 모든 연기를 열심히 하지만 모든 영화에서 '저 캐릭터 끝내준다!'는 반응을 얻는건 아니니까. ''불한당'이 더 낫네'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배우도 관객과 팬들 덕분에 사는 것 아닌가. 좋아해 주면 좋아해 주는대로 부담감은 똑같다."
- 불한당원은 확실히 남다른 이미지가 있다. "아이돌 가수처럼 사랑해 주시는 것 같다. 개봉 후 1년이 다 될 때까지 자발적으로 대관을 진행하는 경우가 없지 않나.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우리끼리도 얘기한다. 나도 영화를 10번 안 봤는데 30번, 40번 씩 본 분들도 있다고 하니까. '이 영화에 그 정도로 마력이 있나?' 싶기도 하다. 푹 빠지지 않고서는 그러기 힘들 것 같다. 대화하는 자리를 몇 번 가졌는데 갈 때마다 유쾌하다. 이 영화 한 편을 두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즐기는 것 같아 나도 즐겁다."
- 평소에는 언제 기쁨과 행복함을 느끼나. "글쎄. 생활이 너무 똑같아서. 특별할 것이 없다. 단조롭다. 하하."
- 연애는 안 하나. "음…. 약간 이제는 늦었다 그래야 하나? 나이도 좀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이미 늦었지 뭐. 특별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