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6·토트넘)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신태용(49)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축구대표팀이 '올인'하고 있는 조별리그 첫 번째 상대 스웨덴이 한국의 영상 분석도 아직 안했다는 다소 자존심 상하는 소식을 듣고도 그는 "신경쓸 것 없다"고 쿨하게 받아 넘겼다. 13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러시아 입성 후 첫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각오다.
손흥민은 자타공인 한국 축구대표팀의 에이스다. 오픈 트레이닝 데이로 진행된 이날 공개훈련에는 한국 교민 50여 명은 물론, 러시아 축구팬들도 상당수 훈련장을 찾았다. 인근 지역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고, 손흥민의 선수 카드를 들고 사인을 받으러 온 꼬마 팬도 있었다. 전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클럽 토트넘에서 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교민들의 우렁찬 응원소리와 러시아 축구팬들의 쇄도하는 사인 요청에도 흔들림 없이 덤덤했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외신들의 집중적인 주시에도 손흥민은 냉정함을 지켰다. 4년 전 처음 월드컵에 나섰을 때와 사뭇 다른, 말 그대로 한 뼘 더 자란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현재의 한국을 "어차피 우린 최약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함을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F조 최약체는 물론, 본선 진출 32개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12일 발표한 파워랭킹에서 한국을 최하위 파나마 다음인 31위로 분류했고 각국 외신들도 한국을 하위권으로 평가하며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별리그 상대국인 스웨덴, 멕시코, 독일 역시 한국을 '1승 제물'로 낮춰보는 게 사실이다.
손흥민은 "4년 전에는 자신감이 많았고, 3경기 다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경기장에 갔다"고 말문을 연 뒤 "지금은 다르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신감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4년 전보다 걱정이 많이 늘었다"고 두 번째 월드컵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그 때보다 훨씬 발전했고 더 좋은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자기 자신과 대표팀이 서있는 위치를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 셈이다.
그는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야네 안데르손 스위스 감독의 발언에도 "스웨덴이 우리 영상을 안보는 건 신경쓸 일이 아니다. 잘 준비했으니 안보지 않겠나"며 덤덤하게 받아쳤다. 이어 "우리가 더 칼을 갈고 경기장에 나가야 한다. 그런 것 하나하나 선수들이 다 머릿속에 기억해야 한다"고 능숙하게 도발을 흘려넘겼다. 그리고 손흥민이 칼날을 얼마나 날카롭게 갈았는지는 그의 말대로 경기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