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제일 긴 볼가강을 타고 스웨덴 바이킹들이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밀려들고 있다. 우렁찬 고함소리와 거대한 체구, 노란색과 파란색이 들어간 유니폼을 갖춰입은 '축구 바이킹'들이다.
한국과 스웨덴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 경기를 치르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스웨덴 유니폼을 입고 얼굴에 스웨덴 국기 페인팅을 한 장신의 남자들이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스트리그노 공항을 활보하고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노란색 유니폼을 보고 친근하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인 "오이 오이 오이(Oi Oi Oi)"를 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노란 옷을 입은 스웨덴 축구팬들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시내 거리에서도 금세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수많은 무리의 스웨덴 축구팬들이 국기를 둘러맨 채 거리를 쏘다니며 러시아 사람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덴마크와 페루의 경기를 중계하는 팬 페스트 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맥주 한 잔씩 시켜놓고 "헤야 스베리에(Heja Sverige, 만세 스웨덴)"를 외치며 건배하는 스웨덴 축구팬들이 축구를 보러 온 니즈니노브고로드 시민들보다 많아보였다. 스웨덴 응원 페이스 페인팅과 네일을 해주는 부스도 팬 페스트 현장에 설치됐다.
이번 경기를 보기 위해 니즈니노브고로드를 찾을 스웨덴 축구팬의 수는 적게는 만 명, 많게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발트해에서 출발해 볼가강을 타고 러시아 땅 깊숙이 전진했던 선조 바이킹들처럼, 지금은 스웨덴의 '축구 바이킹'들이 배 대신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니즈니노브고로드로 밀려들고 있는 중이다. 스웨덴에서 경기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까지는 짧게는 3시간, 길어도 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부담도 덜하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의 공식 수용 인원은 4만 5000여 명이다. 지금 상황에선 현지 러시아 국민들 다음으로 원정 응원을 온 스웨덴 축구팬들이 경기장을 대부분 채울 확률이 높다. 실제로 한국 취재진이 묵고 있는 숙소에도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스웨덴 축구팬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 축구팬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서너 대씩 줄지어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입성한 탓이다.
물론 우리에겐 '붉은 악마'가 있다. 붉은 악마들도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속속 니즈니노브고로드로 모여들고 있다. 예전 대회만큼 대규모 단체 응원단을 꾸리진 못했지만 6회 연속 원정 응원의 신화를 쓰고 있는 '태극기 응원맨' 박용식 씨를 비롯해 신태용호를 응원하러 개별적으로 니즈니노브고로드를 찾은 한국 축구팬들의 모습도 모스크바 세레멘티예보 공항에서부터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붉은 악마들은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축구 바이킹'들과 일당백으로 맞서겠다는 각오다. 이날 팬 페스트 현장에서도 세 명의 한국 청년들이 우렁차게 응원 구호를 외치는 수십 명의 스웨덴 축구팬들과 맞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 대결'을 펼쳤다. 축구를 보고 월드컵을 즐기기 위해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왔다는 김민식(26) 배재구(26) 박병화(27) 씨는 "스웨덴 축구팬들과 얘기하는 대신 '대~한민국' 응원을 보여줬다"며 "한국이 2-0으로 스웨덴을 이길 것"이라고 대표팀에게 신뢰를 보냈다. 먼 길을 날아 러시아까지 간 붉은 악마들의 "대~한민국"이 바이킹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지울 수 있을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