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전 SK 감독이 지난 12일 고척 스카이돔을 방문해 송지만 넥센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전 감독은 라오스 야구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에서 아시안게임 대비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고척=정시종 기자 이만수(60) 전 SK 감독의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이 전 감독은 오는 8월에 개막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참여한다. 직함은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 SK 감독에서 물러난 2014년 겨울 방문, 첫 인연을 맺은 라오스에서 5년째 야구를 전파 중이다. 중간 결실을 확인하기 위해 아시안게임 출전을 결정했다. 1승도 하기 힘든 전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부딪쳐 보고 싶다'며 도전을 원한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지난 4일부터는 20일 일정으로 국내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화성시의 도움으로 베이스캠프를 차렸고, 조아제약은 1000만원 상당의 후원과 의약품 지원을 약속했다. 이 전 감독도 힘닿는 대로 선수단을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조 홈런왕’의 자존심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라오스에서 준비한 나무 배트가 모두 부러져 발을 동동 구를 때도 무작정 배트 회사에 전화해 지원을 부탁했다. 현지에선 알루미늄 배트로 훈련했지만 대회 출전을 위해 나무 배트로 전환했고,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자주 부러지고 있다. 유독 라면을 좋아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라면 회사 담당자 전화번호를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닐 정도다.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오스 야구 전파를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도 묵묵히 앞만 보고 간다. 지난 15일 화성드림파크 훈련장에서 만난 이 전 감독은 "베네수엘라에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희망을 준 엘 시스테마가 있지 않나. 부족하지만 야구를 통해 그런 영향을 주고 싶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 아시안게임 출전은 결단인데. "지난해 11월 라오스와 태국이 국가 대항전을 치렀다. 두 경기(5-11 패·7-13 패) 모두 패했지만 이후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소 10년은 연습해야 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고민했지만 사정하는데 어떻게 하겠나. 금전적으로 잃는 게 많을 수 있지만 이상의 효과를 기대한다. 라오스에서 야구를 하면 수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주변에 입소문을 낼 거고 그렇게 되면 야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진다. 지금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야구를 전파하고 있지만 몇 년 안에 각 도시에 지도자를 파견해 우리나라처럼 전국 대회를 열고 싶다." 이만수 전 SK 감독과 조성배 조아제약 대표이사가 지난 15일 화성드림파크에서 열린 후원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만수 전 감독이 이끄는 라오스 야구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출전 대비 전지훈련을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화성시의 도움을 받아 화성드림파크에서 연습 경기를 소화 중이다. 조아제약은 이 전 감독을 돕기 위해 의약품 지원 등을 약속했다. 화성=배중현 기자
- 1승이 목표인가. "11개 참가국 중 가장 못하는 4개 팀이 먼저 예선을 치러 1개 팀만 올라간다.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권영진 감독은 '1승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쉽지 않은 목표다. 참가국 중 야구를 가장 늦게 시작한 곳이 라오스다. 스리랑카·파키스탄보다 더 늦다. 야구는 시간과 역사가 말해 주지만 라오스는 이제 4년을 넘긴 상황이다. 우리가 아시안게임에서 1승을 한다면 말 그대로 기적이다. 라오스에선 야구에 관심이 많다. 협회는 ‘참가만 하고 오라’고 말하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웃음)"
-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바위에 달걀 던지기다. 못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대하면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내려놔야 한다. 여러 경험을 통해 꿈을 꾸게 하는 게 중요하다. 평생 여권을 만들 기회가 없었고, 비행기도 처음 타 보는 선수들이다. 고척돔에 가서는 신기해서 계속 위만 바라보고 있더라. 큰 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주변에 여러 가지 부탁하는 게 어렵지 않나. "가장 어려운 거다. 내 일이면 솔직히 안 한다. 얘들이기 때문에 하게 된다. 최근에는 부탁하는 걸 알고 전화를 안 받는 사람도 있다. 부탁을 못 들어주면 미안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창피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머리를 숙이면 나를 따라온 아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배트가 없다고 말하면 난 그걸 구해야 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 그래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선수들에게 신발을 100개나 보내 주신 분도 계신다. 길을 가다가 처음 보신 분이 계좌 번호를 물어봤고, 후원금을 보내 주시기도 했다. 지금은 라면 회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라오스에선 선수들이 각각 시골에서 쌀을 가져와 먹는데, 일주일만 되면 그게 다 사라진다. 라면을 정말 좋아하더라. 내가 자비로 공급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 라오스에 더 많은 라면을 보낼 방법을 찾고 있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라오스 야구 선수들을 아기새로 비유했다. 어미새인 자신을 따라오는 아기새.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발품을 팔아 받은 후원은 라오스에서 큰 동력이 되고 있다. IS포토
- 선수들의 체격이 크지 않은데. "스물일곱 살인 선수의 키가 152cm로 우리나라 초등학생보다 작다. 먹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라오스 훈련장 근처에 태국식 피자를 파는 곳이 생겼는데, 한 사람당 한 판씩 사 줬는데 그걸 다 먹더라. 햄버거는 없어서 못 먹는다.(웃음) 한국에 와서는 한 끼 식대로 68만원이 나오기도 했다. 세끼로 치면 100만원을 가볍게 넘긴다." - 들어가는 비용도 꽤 크겠다. "이번 전지훈련에 들어간 비행기 표 비용만 2000만원 정도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려면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 힘들고 고민도 많을 거 같다. "나이를 먹으면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힘든 것보다 얘들이 웃는 게 좋다. 어미의 입만 바라보는 아기 새 같다.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받았던 혜택을 얘들한테 돌려주는 게 목표다. 원조받았던 나라에서 원조해 줄 수 있는 나라로 된 것 같아 행복하다."
- 라오스 야구장 건설은 진척이 없는 상황인가. "많이 속상한 부분이다. 정치권에서 많은 약속을 해 줬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지금은 기업이나 사업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라오스 정부로부터 2만1000평을 무상으로 받았는데 야구장 4개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금액은 15억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좌석은 없고 야구장에 펜스만 있는 구조다."
- 야구가 갖는 의미가 있나.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건 스포츠고 가장 좋은 매개체는 야구다. 이번 한국 훈련에 온 선수는 총 36명(남자 24명·여자 12명)인데 라오스 현지 선수단은 150명 규모다. 최소한 지도자가 5명은 있어야 한다. 현재 3명이기 때문에 좀 더 필요하다. 최근엔 라오스 동덕대 총장이 직접 찾아와서 학교에 야구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러나 지도자가 없어서 논의가 멈춘 상황이다.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울 생각이다. 그게 내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