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두 번째 홀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은 박성현(25·하나금융그룹)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자 이내 눈물을 쏟았다.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캐디 데이비드 존스(북아일랜드)를 안은 채 흐느끼기도 했다. 박성현은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훔치며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 냈다.
박성현은 2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켐퍼 레이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유소연(메디힐)과 하타오카 나사(일본)를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해 미국 무대에 진출, US여자오픈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메이저 우승컵을 수확했다. 우승 상금으로 54만7500달러(약 6억1000만원)를 챙겼다.
16번홀(파4)에서 나온 ‘슈퍼 세이브 샷’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티샷이 페어웨이 오른쪽 해저드 라인 안쪽에 떨어져서 힘겹게 시도한 두 번째 샷 결과가 좋지 않았다. 워터해저드를 가로질러 그린을 향했지만 짧았고, 그린 왼쪽 워터해저드 끝 러프에 공이 걸렸다. 박성현은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간신히 어드레스를 취한 뒤 샷을 해야 했다. 박성현은 절박한 상황에서 환상적인 로브샷을 선보이며 위기를 넘겼다. 박성현의 클럽 헤드가 긴 풀들로 칭칭 감길 정도로 억세고 힘겨웠지만 공은 핀 1m 내에 붙었다. 1998년 US여자오픈 때 ‘박세리의 맨발 투혼 샷’이 연상될 정도로 짜릿했다.
16번홀 극적인 파세이브로 위기를 넘긴 박성현은 이날 노 보기 행진을 이어 갔다. 2타 차로 우승을 눈앞에 뒀던 유소연은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10언더파를 기록한 3명이 연장전을 통해 우승자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종일 유소연이 1타를 잃은 반면 박성현은 3타를 줄였다. 하타오카는 이날 무려 8타를 줄이는 맹타로 연장 승부에 합류했다. 지난주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하타오카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은 승부가 예측됐다.
18번홀(파4)에서 진행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유소연이 먼저 위기를 맞았다. 유소연의 세컨드 샷이 약간 밀리면서 워터해저드 쪽으로 향했다. 공은 다행히 그린 끝부분에 걸렸다. 박성현이 셋 중에 가장 핀 가까이에 두 번째 샷을 붙였다. 먼저 퍼터를 든 유소연은 6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환호했다. 다음으로 퍼트를 시도한 하타오카는 버디에 실패했다. 컨디션이 좋았던 박성현은 3m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승부를 두 번째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2차 연장전에서도 박성현이 핀 가까이에 아이언샷을 붙였다. 유소연의 세컨드 샷은 핀에서 조금 멀었다. 박성현은 1차 연장전 때보다 더 가까운 2.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겨 뒀다. 신중하게 라인을 살폈던 유소연은 과감한 스트로크를 했다. 하지만 퍼터를 떠난 공은 끝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휘면서 홀 왼쪽으로 살짝 비껴갔다. 반면 박성현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숨 막히는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성현은 올해 텍사스 슛아웃에서 시즌 첫 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3개 대회 연속 컷 탈락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퍼터를 바꾼 것이 적중했다. 34인치에서 33인치로 퍼터 길이를 줄였고, 퍼트 루틴에 변화를 줄면서 들쭉날쭉했던 퍼팅이 안정감을 찾았다. 박성현은 “세상에서 제일 기쁘다. 보기 없이 플레이를 한 게 꿈만 같고, 트로피가 옆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