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조작으로 2015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던 '디젤게이트'가 완전히 잊힌 듯하다. 국내시장에서 폭스바겐의 대반전이 벌어졌다. 올해 4월 시장 복귀와 무섭게 업계 3위 자리를 꿰찼다. 신형 티구안 등에 적용한 '묻지 마' 할인 공세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로 인한 국내 소비자 보상에는 뒷짐만 진 채, 실적 만회를 위한 할인 판매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부활한 폭스바겐, 수입차 3위 복귀
8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폭스바겐의 선전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5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가 각각 5839대·5222대로 업계 선두를 다투는 가운데 시장에 복귀한 지 한 달 만에 2194대를 팔아 올해 처음으로 3위에 올랐다. 이는 디젤게이트 이후 무려 25개월 만이다.
폭스바겐의 상승세를 이끈 것은 지난 4월 본격적으로 출고된 신형 티구안이다.
신형 티구안 2.0 TDI는 지난 5월 1200대가 판매돼 BMW 520d(1239대)에 이어 베스트셀러 모델에 이름을 올렸다.
신형 티구안의 선전은 판매 3개월째를 맞은 지난달에도 이어졌다.
티구안 2.0 TDI 모델이 1076대로 전체 수입차 베스트셀러 모델에 올랐고, 사륜구동 버전인 티구안 2.0 TDI 4모션도 452대가 판매됐다.
이를 바탕으로 폭스바겐은 지난달에도 국내시장에서 총 1839대를 판매해 벤츠(6248대)와 BMW(4196대)에 이어 시장에서 3위를 유지했다.
볼썽사나운 할인 판매
폭스바겐의 이 같은 '역전극'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 벤츠·BMW 등 독일차들의 과도한 프로모션을 따라간 폭스바겐의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독일차 브랜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규모 할인 프로모션에 나서고 있다.
벤츠는 지난 2월 중형 세단 'E200'에 최대 1500만원 할인을 제공해 3월 베스트셀러카(2736대 판매)에 올랐다. BMW 역시 올해 초 중형 세단 '3시리즈'를 최대 1000만원 이상 할인 판매해 2월 수입차 판매 1위(1585대)를 차지했다.
폭스바겐 신형 티구안은 2.0 TDI·2.0 TDI 프리미엄·2.0 TDI 프레스티지·2.0 TDI 4모션 프레스티지 등 총 4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가격은 3860만~4750만원이다.
디젤게이트 사태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 정지 조치를 받은 폭스바겐은 올해 4월 신형 티구안을 출시하면서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해 고객몰이를 했다. 신차임에도 폭스바겐 파이낸셜서비스 이용 시 8% 할인 혜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기본 모델인 2.0 TDI(3860만원)는 3500만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이는 현대차가 싼타페 최고급 모델인 '인스퍼레이션' 기본 트림 가격과 별차가 없는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의 이 같은 신차 할인 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유럽 등 해외 자동차 시장을 보면 한국처럼 과도한 할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며 "폭스바겐이 할인 정책을 두고 세계적 트렌드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상·책임은 여전히 뒷전
일부에서 도덕적인 스캔들을 일으킨 폭스바겐의 할인 정책에 유독 한국 소비자만 지갑을 활짝 열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호갱(호구 고객)'을 자처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와 관련해 북미에서 적절한 보상을 실기한 반면, 한국에서는 사건이 발생된 지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실제 폭스바겐은 2015년 디젤게이트 당시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미국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벌금으로 28억 달러(약 3조184억원)를 냈다. 이뿐이 아니라 추가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차량 환매·수리 외에 차주배상금(최고 1100여 만원)까지 지급하며 총 30조원을 썼다.
반면 한국에서는 차주들에게 100만원짜리 쿠폰을 지급한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관련 책임자 상당수가 본사가 있는 독일로 출국하며 재판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요하네스 타머 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 사장은 작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기소됐지만, 그해 6월 건강상 이유로 독일로 출국한 뒤 지금까지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당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재직했던 피고인 7명 가운데 한국인 이사 1명만이 재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 확실한 법적책임 없이 판매만 우선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제대로 된 책임 없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판매만 우선시하는 모습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이끄는 회사의 행동으로 보기에 실망스러운 모습"이라며 "지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