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가에 프로야구단 두산 베어스를 칭찬하는 기업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자자하다. 기업이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스포츠단 1순위에 꼽힐 정도로 인기와 실력을 자랑하지만, 당장의 이익만을 좇지 않는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국내 프로스포츠계 역사상 최장기간인 24년 동안 후원 파트너 관계를 맺어 온 스포츠 의류 용품 기업 휠라코리아와 치킨 프랜차이즈 KFC,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들은 "두산 베어스는 비즈니스 관계 이상의 끈끈한 정이 있는 구단이자 파트너다. 유통 기업 사이에서 두산의 의리에 고마워하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4년 인연 '휠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사이"
두산 베어스는 지난 12일 마감한 2018 프로야구 정규 시즌 전반기를 압도적인 1위로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2위인 한화 이글스와 7경기 차인 두산 베어스의 정규 시즌 우승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두산 베어스의 전반기 마지막 홈 3연전이 열렸던 6일. 잠실구장에는 반가운 손님이 시구자로 나섰다. 1994년 이후 24년째 두산과 파트너십 관계를 이어 온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었다. 국내 기업 중 프로스포츠단과 20년 세월이 넘도록 파트너십 관계를 맺어 온 곳은 휠라코리아뿐이다. 양측은 지난해 말 3년 재계약을 맺으며 2020년까지 한 배를 타게 됐다.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갖춰 입은 윤 회장은 전 직원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뿌렸다. 이날은 휠라코리아의 창립 27주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함께 나눈 사이다. 양 사가 인연을 맺은 1994년 당시 두산 베어스는 리그 최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휠라코리아와 후원 관계를 체결한 이듬해 창단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서병덕 휠라코리아 스포츠마케팅팀 부장은 "부부도 24년 이상 살기 쉽지 않은데 두산 베어스와 휠라코리아는 무려 24년이나 인연을 이어 왔다"며 "사실 올해 재계약을 앞두고 굴지 글로벌 브랜드 등이 두산 베어스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안다. 그중에는 더 좋은 조건도 있었는데 고맙게도 두산 베어스가 우리 손을 잡았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두산 베어스와 모기업인 두산그룹 그리고 휠라코리아의 기업 경영 마인드가 퍽 닮았다. 상대가 어려울 때는 먼저 손을 내밀고 좋을 때는 등을 두드린다. 역대 최장기간 신뢰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왕돈 두산베어스 마케팅팀 팀장은 "재계약 시점이던 지난해 말 복수의 스포츠 의류·용품 기업이 파트너를 맺고 싶다고 제안했다. 휠라코리아보다 다소 좋은 조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큰 차이가 아니라면 수십 년 동안 함께 노하우와 신뢰를 쌓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두산그룹과 두산 베어스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타 기업에 매각되도 '의리'는 쭉
두산의 의리는 모기업이 보유하던 파트너들이 타 기업에 매각되도 계속된다.
두산그룹은 2008년 계열사인 두산주류BG가 보유했던 간판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을 롯데칠성음료에 매각했다. 롯데그룹은 롯데 자이언츠라는 두산 베어스의 '라이벌'이자 경쟁사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는 물론이고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 오너 일가까지 여전히 '소주=처음처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맥을 좋아하는 중역의 생일이라 케이크를 특별 주문해 갖고 왔다'면서 처음처럼 모양을 한 설탕 과자를 장식품으로 올린 케이크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직원들 역시 회식 날에는 여지없이 처음처럼을 마신다.
두산 베어스 관계자는 "소주 하면 처음처럼 아니겠나. 모기업이 처음처럼을 매각했다고 해서 연을 끊는 건 우리 기업 문화가 아니다"라면서 "지금이야 롯데칠성음료로 넘어갔지만, 과거에는 다 두산 가족이었다. 긴 세월 동안 함께한 정과 동고동락하며 쌓은 서로 간 신뢰도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은 KG그룹의 품에 안긴 치킨 프랜차이즈 KFC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중공업 중심으로 기업을 재편하면서 과거 주력 사업이었던 식음료 사업을 모두 접었다. 2014년에는 사실상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식품 사업인 KFC 지분 100%를 사모펀드인 시티벤처캐피털(CVC)에 넘겼다.
모기업과 사업적 관계는 끝났지만 두산 베어스의 KFC 사랑은 끊기지 않았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그룹 오너 일가나 VIP가 구장을 방문하면 치킨은 무조건 KFC만 시킨다는 것이다.
KFC 관계자는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두산 베어스는 아직도 우리 치킨을 주문해서 드신다고 알고 있다. 참 고맙다"고 했다.
이 팀장은 "KFC와 두산그룹의 인연은 팔리기 전까지 수십 년 인연을 계속한 사이"라며 "오너가나 VIP가 구장에 오면 치킨은 KFC의 '핫윙', 햄버거는 버거킹만 찾는다. 이 두 가지 메뉴 중 다른 걸 시키거나 드시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