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여름 성수기를 맞았지만 아이스크림이 반값 미끼 상품으로 전락해 아무리 많이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어서다. 업계에서는 재주는 빙과 제조 업체가 부리고 돈은 소매점과 중간 유통상이 가져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조 업체들은 아이스크림 가격정찰제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소매점의 반발이 심해 제도가 시장에 안착될 지는 미지수다.
반값 할인에 무너진 아이스크림 시장
2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소매점 매출 기준으로 지난해 빙과시장 규모는 1조6837억원이었다.
이는 2016년 1조9618억원보다 약 2800억원(14.2%) 감소한 수치이다. 올해 1분기 매출 역시 2893억원으로 전년 동기(3046억원) 대비 5.04% 떨어졌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은 롯데제과·롯데푸드·빙그레·해태제과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A 빙과 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며 "신제품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매출이 줄고 수익성도 떨어져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이 침체의 원인으로 '반값 아이스크림'을 꼽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이스크림이 정가보다 50% 할인된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가 바보가 되는 시장이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빙과류는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하고 일부 제품은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 아이스크림 할인점까지 등장해 '반값 아이스크림'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들 할인점 대부분은 자유업으로 신고된 소규모 매장으로, 임시로 설치한 입간판과 아이스크림 쇼케이스만을 두고 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초기 비용이 적게 들고 여름 한 철 단기간에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전국에 약 700개의 프랜차이즈 업체 포함 1000여 개가 운영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B 빙과 업체 관계자는 "할인점의 경우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당장 매출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자칫 과도한 할인 판매로 인해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 수 있어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마진 싸움이다. 할인점과 중간 유통사는 마진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납품가를 낮추다 보니 제조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가격정찰제' 내놨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
이에 빙과 업체들이 내놓은 카드는 '가격정찰제'다.
모든 유통 매장에 대한 공급가격을 일원화하고 일종의 기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왜곡된 가격 구조를 바로 잡고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부터 롯데제과 셀렉션·티코(4500원), 해태제과 베스트원·체리마루·호두마루(4500원), 빙그레 투게더(5500원), 롯데푸드 구구(5000원) 등 카톤 제품(종이로 된 포장에 아이스크림을 담은 제품) 등의 가격이 정찰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가격정찰제가 시장에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빙과 업체들은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시도했다가 흐지부지된 바 있다. 소매점이 당장의 매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저렴한 '반값 아이스크림'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올해 초 가격정찰제가 시행됐지만, 정찰제 가격에 판매하는 곳은 드물다"며 "소비자들도 가격이 오른 제품을 외면하고 있어 시장의 반응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실제 가격정찰제 이후에도 인터넷 할인매장에서는 여전히 할인 판매가 성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빙그레의 '투게더'의 경우 인터넷 할인매장에서는 아직도 정찰가보다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 일부 온라인몰에서는 정가가 5500원이지만 4000원대에 구매 가능하다. 5000원인 롯데푸드의 '구구'도 11번가, G마켓 등에서는 2880원에서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빙과 업체들은 가격정찰제가 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에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C 빙과 업체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빙과업체는 유통채널에 가격책정을 강요할 수 없다"며 "중간 도매업자를 비롯해 소매업자, 제조 업체가 모두가 아이스크림의 가격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