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고교 야구. 청원고 7번 김성훈은 뜨거웠다. 졸업반이었던 그해 16경기에 출전해 타율 0.410(61타수 25안타)를 기록했다. 삼진은 2개(72타석). 유망주가 모인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선 도루왕을 차지했다. 배명고와 주말 리그 경기에선 '1경기 4도루'를 성공시켰다.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선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보면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게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게'는 신체 조건에서 오는 편견이다.
키가 작다. 172cm다. 올해 KBO 리그 등록 선수 중 밑에서 네 번째다. 아담한 체구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는 이용규(한화)보다 3cm가 더 작다. 이 수치는 고등학교 때부터 큰 변화가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았다. 대학교 때도 비슷했다. 다리가 긴 사람들이 보폭을 넓게 해 뛰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었지만 크지 않았다. 키가 컸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이후 고심을 거듭했다.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김성훈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이하 문화예술대)로 향했다. 부모님의 권유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드래프트가 되지 않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4년 야구부가 창단된 문화예술대는 변방에 가까웠다. 그러나 김성훈은 졸업반인 2015년 제7회 경기도협회장기 대학야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최우수선수상을 비롯해 도루상, 타점상, 타격상까지 4개 부문을 석권했다.
결국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 51순위 지명을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훈은 "기대는 됐지만 내가 뽑힌 게 맞나 싶었다. 굉장히 좋았지만 얼떨떨했다"며 "대학에 진학해 타격이 향상됐다. 힘을 쓸 줄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경기에 나가기 위해 외야 수비를 하기도 했는데 대학에선 내야를 맡았다. 수비도 늘었다"고 답했다. 드래프트 미지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극복한 결과는 달콤했다.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영원한 숙제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해 몸을 키워 보려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경기 출전 빈도가 늘면서 체력 소모가 커진 것이 이유다. 장비도 달리해 봤다. 김성훈은 지난해 후반 배트 무게를 900g까지 늘렸다. SK 간판타자 최정(무게 900g·길이 34인치)을 비롯해 홈런 타자들이 많이 쓰는 무게와 동일했다. 하지만 체력 소모가 커서 올해 다시 870g(33인치)을 쓰기 시작했다. 무게와 상관없이 타격할 땐 배트를 짧게 쥔다. 그는 "몸에 맞게 잡는 것 같다. 메이저리그 타격은 잘 참고하지 않는다. 국내 선수와 가야 하는 방향이 다르지 않나. 다만, 이용규 선배의 타격 영상을 어렸을 때도 많이 보고 지금도 참고한다"고 말했다.
롤모델은 이용규다. 김성훈은 "야구 스타일이 내가 해야 하는 스타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타석에서 임하는 자세와 타격하는 방법 등을 어렸을 때부터 찾아봤다"고 전했다. 장타가 쉽지 않은 체격 조건상 정확도에 포커스를 맞추고 투수를 괴롭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점차 타석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시즌 타율은 지난 28일까지 0.238로 낮지만 7월 이후 출전한 15경기 타율은 0.375(16타수 6안타)다. 주전 2루수로 출전하는 경기 수를 늘려 가며 타석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7일 대구 KIA전에선 7타수 4안타로 개인 한 경기 최다 안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김한수 감독은 멀티 수비 능력 등을 고려해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시킨 뒤 단 한 번도 2군에 내리지 않고 있다.
김성훈은 몸을 낮췄다. 그는 "(1군에 이렇게 오래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버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올 시즌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게 목표"라며 "모든 면에서 보완해야 한다. 아직 성장하는 단계다. 더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부상당하지 않고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고교 졸업 이후 드래프트 미지명→대학 진학→프로 입단→2군 무명→1군 백업이라는 단계를 거쳤다. 신장 172cm로 하는 김성훈의 '작은' 야구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