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뒤 114년 만에 폭염이 최대 성수기를 맞았던 항공·여행·유통 업계의 희비를 갈랐다.
본격 휴가 시즌인 7월 말~8월 초까지 기록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바캉스 계획을 취소한 사례가 늘어나면서 유명 피서지가 텅텅 비고, 여행주는 폭락했다.
반면 에어컨과 편의 시설을 갖춘 실내 복합 테마 몰이나 백화점은 더위를 피해 몰려든 고객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여행 업종 대장주인 하나투어의 주가는 지난 6월 1일 10만3000원에서 이달 3일 6만9300원으로 두 달여 만에 32.72%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모두투어 주가도 30.09% 곤두박질쳤다.
이들의 부진은 여행 업계의 실질적 '큰손'인 중·장년층이 지갑을 닫으면서 패키지여행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내수 부진과 함께 유례없는 더위가 찾아오면서 해외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다.
국내 유명 피서지도 여행객이 줄었다.
각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동해안 93개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 수는 작년 같은 기간 770만2823명에 비해 14.5%(111만8000여명) 감소했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은 피서객 숫자가 지난해보다 30~40% 늘긴 했지만, 서늘해진 밤늦게 바닷가로 나오면서 인근 상권도 성수기를 누리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다.
반면 실내 쇼핑몰 등 유통가는 웃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형 실내 테마파크 몰이나 백화점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백캉스' '몰링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롯데에 따르면 지난 1일 롯데월드몰을 찾은 사람은 20만 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다음 날인 2일에는 21만 명으로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올해 상반기 주 중 하루 평균 방문객은 11만 명인데,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신세계의 스타필드 하남도 7월 넷째 주 방문객 수가 직전 월 대비 15% 증가했다. 평균 방문객 수는 주 중 5만~6만 명, 주말 10만~11만 명에 달한다. 이남곤 신세계 홍보팀 부장은 "스타필드 하남도 7월 들어 하루 평균 10만∼11만 명이 방문했다. 평균 주말 하루 방문객보다 10∼11% 늘어난 수준"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무더위를 백화점에서 피하려는 백캉스족이 늘면서 7월 평균 고객 체류 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바캉스 대신 실내 몰을 찾는 휴가객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A씨는 "요즘 같은 더위에 야외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더 힘든 일"이라면서 "올해 휴가는 하남시에 있는 실내 복합 테마 쇼핑 몰로 다녀왔다. 시원한 실내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진짜 휴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더위를 피해 시내 쇼핑몰에 갔다는 B씨는 "여의도에 있는 쇼핑몰에 갔는데 주차할 만한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다들 쇼핑하기보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폭염 때문에 '홈캉스' '몰링족' 등 신조어가 대거 만들어질 정도로 바캉스 트렌드가 바뀌면서 관련 업계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