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모터쇼에서 한국GM 모델들이 ‘이쿼녹스’를 선보이고 있다. / 한국 GM 제공
한국GM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경영 정상화에 돌입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판매가 여전히 뒷걸음질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구원투수'로 야심 차게 선보인 '이쿼녹스'의 부진이 뼈아프다. 미국 시장에서 압도적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카'지만 국내에선 찬밥 신세다. 현대자동차의 '싼타페' 등 경쟁 모델과 비교해 성능은 물론이고 가격 경쟁력에서도 뒤처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2%' 부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라한 성적표 '이쿼녹스'… 신차 효과 없었다
5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달 국내시장에서 총 9000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6.7% 감소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로써 같은 기간 9823대를 팔아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월간 국내 판매 실적을 낸 쌍용자동차에 뒤져 업계 4위에 머물렀다.
업계에서 지난 6월 출시한 중형 SUV 신차 이쿼녹스의 부진이 아쉽다는 평가가 나왔다.
출시 첫 달 385대를 기록하며 실망스러운 초반 성적을 보여 준 이쿼녹스는 지난달에는 단 191대만 판매되며 한국GM 실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GM이 경영 정상화를 목표로 투입한 신차라고 했을 때 이건 '민폐'에 가까운 성적표다. 당초 한국GM은 이쿼녹스의 월 판매 목표를 1000대로 잡았다.
이쿼녹스의 부진을 두고 업계에서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 소형 SUV와 중형 SUV 중간쯤에 위치한 이쿼녹스는 출시 전까지만 해도 두 시장을 모두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국GM은 이쿼녹스의 가격을 국내 중형 SUV 모델들보다 높게 책정해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실제 이쿼녹스의 가격이 2945만원부터 시작되는 반면 한국GM이 경쟁 차종으로 지목한 르노삼성 'QM6'는 2720만원부터 판매된다. 현대차 싼타페(2842만원부터), 기아차 '쏘렌토(2788만원부터)' 등도 이쿼녹스보다 시작 가격대가 낮다.
그렇다고 이쿼녹스의 성능이 월등히 앞선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쿼녹스는 1.6ℓ 터보 디젤엔진이 6단 자동변속기와 조합을 이룬다. 이를 통해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2.6kg.m의 힘을 낸다.
반면 싼타페와 쏘렌토의 2.0ℓ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186마력, 최대토크 41.0kg.m, QM6 2.0ℓ 디젤은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38.7kg.m를 낸다. 이쿼녹스보다 배기량도 높고 출력도 높다.
이쿼녹스가 자랑하는 13.3km/L 복합연비 역시 싼타페와 쏘렌토의 13.8km/L보다 떨어진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쿼녹스의 낮은 출력은 도심 주행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속에서 재가속할 경우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며 "파워트레인 성능과 가격을 고려하면 싼타페와 QM6를 두고 굳이 이쿼녹스를 선택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각종 악재에 업계 3위 멀어지나
문제는 한국GM의 하반기 전망이 어둡다는 데 있다. 이쿼녹스가 부진한 가운데 나머지 모델들 역시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먼저 지난 5월 출시된 '스파크'는 신차 효과가 차츰 사그라들고 있다. 지난달 판매량이 3572대로 전달 대비 무려 7.2% 줄었다.
최대 경쟁 모델인 기아차 '모닝'이 월별 판매량을 5161대까지 끌어올린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정표다.
올해 한국GM이 준비한 '볼트EV'의 출고 물량이 바닥을 보이는 것도 악재다. 볼트EV는 지난 6월 무려 1648대가 판매되며 쌍용차를 턱밑까지 쫓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올해 물량은 수출에 의존하는 만큼 5000대가량으로 이미 정해진 상태다. 이미 3500대 이상 팔려 나갔다. 더 이상 한국GM 실적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GM이 올해 하반기 사실상 신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차량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 폐쇄된 군산공장의 재고로 털어 내던 '올란도'의 물량도 동난 상태다. 그나마 위안은 중형 세단 '말리부'가 할인 프로모션에 힘입어 어느 정도 팔려 나가고 있다는 정도다. 이에 한국GM은 하반기 중 대형 SUV 트래버스와 픽업트럭인 '콜로라도'를 조기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시장에서 경쟁 모델이 없다시피 한 대형 SUV와 픽업트럭 시장을 공략해 본격적인 실적 회복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이쿼녹스의 판매량을 월 1000대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SUV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트래버스의 출시 시기를 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픽업트럭인 콜로라도 출시 시기는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