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고 졸업 후 미국 오클랜드와 계약했던 포수 김성민. 그러나 4년여 만에 방출돼 귀국했고, 현재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뛰며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 중이다. 김성민 제공 오는 9월 10일 열리는 2019 KBO 신인 드래프트에 나오는 '마이너리그 유턴파'는 5명(이학주·하재훈·이대은·김성민·윤정현)이다. 이대은과 이학주의 상위 지명이 유력한 가운데 김성민(성남 블루팬더스)도 간절한 마음으로 프로 구단의 선택을 기다린다.
야탑고를 졸업한 포수 김성민은 2011년 3월 오클랜드와 51만 달러(5억7000만원)에 계약했다. 2010년 8월 열린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8강에서 아마 최강 유창식(당시 광주일고)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때려 내며 스카우트의 눈도장을 찍었다. 포수가 미국에 진출한 것은 1999년 권윤민을 비롯해 역대 일곱 번째. 그만큼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이뤄지지 않았다. 3년 차 루키리그에서 4할대 타율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상위 싱글 A에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뇌진탕 부상이 겹친 2015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곧바로 귀국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실력이 부족했다"고 자평했다.
현재 김성민은 블루팬더스 소속이다. 경기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독립 야구단을 선택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있을 때도 일과가 끝난 뒤 오후에 3시간 정도 꾸준히 훈련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집해제 이후 본격적으로 경기를 뛰며 실전 감각을 쌓았다. 오는 2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트라이아웃에도 정상적으로 참가해 최종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A구단 스카우트는 "체격이 꽤 좋다. 힘이 장사다"라고 귀띔했다.
동갑인 하주석(한화) 박민우(NC) 한현희(넥센)와 비교했을 때 꽤 먼 길을 돌아왔다. 김성민은 "2년 동안 기다리는 게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줄곧 포수를 맡았다. 기복 없는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포수를 맡고 있는 김성민. 야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줄곧 포수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다. 김성민 제공 -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소감은. "2년 동안 기다렸다. 처음엔 언제 하나 막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날짜가 막상 다가오니까 설렘이 크다. 준비를 안 하고 있었다면 불안했을 텐데 나름대로 준비해 왔던 터라 긴장이 덜 되는 것 같다. 불안감은 없다."
- 마이너리그 4년 차에 방출됐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보여 준 것이 없다. 못한 게 가장 컸다. 또 뇌진탕도 겪었다. 2014년 스프링캠프를 잘 소화해서 시즌에 대비했는데 개막을 앞두고 경기 중 포수 마스크에 타구를 맞고 뇌진탕 부상을 겪었다. 그 여파로 3개월 정도 쉬었다.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경기를 뛰었지만, 그 이후에도 머리가 조금 아팠다. 구단에선 부상에 부진까지 겹쳐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 미국에서 다른 팀을 알아보진 않았나. "방출당하니까 군대라도 빨리 가자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바로 귀국했다."
- 뇌진탕의 후유증은 없나. "이미 미국에 있을 때 다 나았다. 몸이 크게 아프지 않다. 야구를 시작하고 난 뒤 단 한 번도 수술하지 않았다."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의 김성민(오른쪽 두 번째). IS포토 - 루키리그와 달리 하위 싱글 A에서 고전했다. "부상과 관련 없다. 그냥 못한 게 맞다. 하위 싱글 A에 올라간 뒤 처음엔 잘 맞았는데,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페이스가 떨어졌다. 실력이 부족했다."
- 방출 통보를 받았을 때 어땠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못해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바로 귀국해서 2016년 3월부터 사회복무요원(성남 상대원동 주민센터)을 시작했다. 일단 1년 정도 쉬었고, 그 이후부터 몸을 천천히 만들었다. 그 이후 성남 블루팬더스에 들어가게 됐다. 최근 훈련하면서 체중이 13kg 정도 빠졌다."
- 미국 진출을 후회하진 않나.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 '실패한' 선수라는 꼬리표가 있는데. "솔직히 난 실패해서 온 게 맞다. '유턴'이 아니라 실패해서 방출된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긴 싫지만, 반박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다."
- 미국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미국에선) 선수 혼자서 해야 한다. 코칭스태프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다만, 그 영향으로 몸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내 몸을 스스로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생활은 어떤가. "감독님(마해영)이 타격 쪽에서 워낙 유명하지 않나. 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다. 정신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기에 있는 선수들 모두가 절실하다. 그래서 (함께 운동하는 게) 좋다."
- 포수를 처음부터 했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투수와 포수를 계속했다. 그 이후 고등학교 3학년부터 포수에 전념했다. 해 온 게 포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포수밖에 없다. 힘든 포지션이지만 괜찮다."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의 김성민. 루키리그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하위 싱글A를 벗어나지 못하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IS포토 - 1루수 경험은 없나. "미국에서 잠깐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단에 '다시 포수를 하겠다'고 했다. 수비나 도루 저지 능력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타격이다. 다행히 지금은 페이스가 빨리 올라와서 몸 상태가 좋다. (트라이아웃이 열리는) 오는 20일까지 100%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으면 소속 구단에서 1루를 맡을 수 있다. "솔직히 어떻게든 경기를 뛰는 게 중요하다. 포수로 뛰면 물론 좋겠지만, 구단이 원한다면 거기에 맞춰서 따라가는 게 맞다."
- 공격과 수비 중 자신 있는 부분은. "고등학교 때는 둘 다 자신 있었다. 지금은 수비 쪽에 더 중점을 둔다. 1차적으로 수비를 안정적으로 해야 타격이 따라온다. 수비가 안되면 타격도 잘 풀리지 않는다."
- 2년간 기다림이 길지 않았나. "엄청나게 길었다. 그래도 2018년에 들어오니 시간이 빨리 가더라. 부모님께서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긴장하실 것 같은데, 묵묵히 지켜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