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58)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은 지난 19일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D조 조별리그 3차전(자와바랏주 브카시)에서 강호 일본을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베트남은 아직 23세 이하(U-23) 경기나 A매치에서 일본을 꺾은 적이 없다. 일본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5위고 베트남은 102위다. 2020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은 이번 대회에 U-21 팀을 출전시켰지만,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일본의 역대 아시안게임 성적은 금 1·은 1·동 2개. 3전 전승을 거둔 베트남(승점 9)은 D조 1위로 16강전에 올랐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6개 조 1·2위와 조 3위 6개 팀 중 상위 4개 팀이 16강전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현지 언론은 베트남의 승리를 대서특필했고, 현지 SNS에 응원 글이 쏟아졌다.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이 일본전에서 승리한 소식을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머리기사로 다루며 박 감독의 전술을 자세히 소개했다.
작년 10월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이미 한 차례 베트남 축구의 기적을 썼다. 그는 부임한 뒤 첫 국제 대회인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호주와 이라크·카타르 등 아시아 강팀들을 물리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과 선수단은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와 만난 뒤 대표국립경기장에서 성대한 귀국 환영 행사에 참여하는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베트남 축구팬들은 박 감독을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등크(네덜란드) 같다고 해서 '베트남 히딩크'라고 부른다.
성공 비결은 '눈높이 지도'로 꼽힌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그는 자신감이 부족한 베트남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었다. 박 감독의 사랑을 받은 베트남 제자들은 스펀지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박 감독은 일본전에서 승리한 뒤 "베트남이 일본을 못 이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감독으로서 선수를 믿었다. 피지컬과 기술에서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이 21세 이하지만 프로 선수가 15명이나 된다"며 "성인들은 한 번도 못 이겼는데 승리를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선을 다해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일본을 잡아 내며 베트남 축구사에 또다시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박 감독이 16강전을 통과하면 베트남 첫 아시안게임 8강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박 감독은 그러나 "큰 그림을 보기보다 한 경기 한 경기를 결승이라고 생각하고 뛰고 있다"며 16강전 준비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조 1위, 베트남이 조 2위를 해서 16강전에서 만날 것이라는 전망은 양국의 순위가 뒤바뀌면서 무산됐지만 두 팀은 여전히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지만 난 베트남 대표팀의 감독"이라며 "누구를 만나든 간에 베트남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