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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23. 환생과 평행 이론
북한산에 지금은 문수사라고 하지만 예전에 문수암이었던 유명한 사찰이 있다. 부친께서는 생전에 서울에 가시면 으레 문수암을 찾으셨다. 문수암은 조선 왕조와 인연이 깊은 사찰로,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명성황후가 모셨고, 석가모니불은 이방자 여사가 모셨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문수암의 인연은 기이할 정도다. 이 전 대통령의 어머니는 황해도에 살고 있었음에도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해 이 전 대통령을 낳았다고 한다. 언젠가 부친은 문수암에 다녀오신 뒤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다. “문수암 옛 주지 스님의 서체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체가 많이 비슷하더구나.” 오래전 돌아가신 문수암 주지 스님과 이 전 대통령은 무슨 인연이었을까.
현재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조명하는 글을 집필 중인 P교수는 재미있는 증언을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체와 이토 히로부미의 서체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마치 평행 이론처럼 일치하는 두 사람의 삶에 관한 글은 과거에도 쓴 바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 10월 14일,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에 태어났다. 태어난 일이 ‘14’로 일치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에 맞아 죽었으며,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가 쏜 총알에 맞아 사망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한 지 정확히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생의 쌍곡선도 비슷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44세 무렵에 실질적 총리가 됐으며, 박정희는 44세에 5.16에 성공해 2년 3개월 동안 군사정부의 수령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모두 ‘근대화’와 ‘유신’에 집착했으며 적이 많았다. 유난히 여성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두 번 결혼했고, 부인의 성격과 출신도 비슷했다.
정조가 아끼던 규장각에서 술을 마신 전적도 같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는 죽기 몇 달 전 규장각에서 술판을 열었고, 박정희도 대통령으로서 금기를 깨고 규장각에서 술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이토 히로부미는 69세, 박정희는 63세에 눈을 감았다.
일본의 물리학자 무라카미 가즈오는 DNA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일본의 총리, 한 사람은 한국의 대통령이었는데도 두 사람의 인생은 마치 한 사람의 삶을 보듯 닮았다.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뿐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의 삶도 그러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향년 30세에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김재규는 1926년 3월 6일에 태어났다. 안중근 의사가 사망한 날인 ‘26’이라는 숫자는 김재규의 탄생 연도 ‘26’과 일치했다.
또 안중근 의사가 사망한 3월에 김재규가 태어났으며, 안중근 의사의 사망일과 김재규의 생일은 단 20일 차였다. 유난히 ‘26’과 인연이 많았던 안중근 의사와 김재규는 ‘26일’에 각각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를 총으로 저격한 것이다.
역사의 평행 이론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문수암의 주지 스님과 이승만 대통령,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 안중근 의사와 김재규의 알려지지 않은 생의 연결 고리는 DNA가 가진 비밀처럼 신비스럽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 P교수의 새로운 책을 기다리면서 역사의 한 획을 담당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