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0세, 앳된 얼굴의 소녀가 하는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선수 데뷔, 은퇴 그리고 제2의 인생 시작까지 또래보다 두 배는 이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정다영(20)은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뮤지컬 배우'라는 독특한 명함의 소유자다.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 그리고 국가대표 태극마크까지 골고루 달아 본 전직 리듬체조선수 정다영은 은퇴 이후 뮤지컬 배우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중이다.
지난 17일 정다영이 출연 중인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극장인 서울 혜화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2015년 태릉에서 개최된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 이후 두 번째, 정다영이 '선수'에서 '배우'로 직업을 바꾼 뒤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일찍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다는 정다영은 "무용은 예술인데 리듬체조는 왜 예술에 끼지 못할까. 스포츠라고 해도 예술 점수가 있는 종목인데…. 그런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듬체조를 오래 해 왔기 때문에 내가 가진 유연성을 예술과 접목해 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뮤지컬이 (리듬체조와) 가장 잘 맞는 것 같았다"며 "지난해 11월 알앤디웍스 신인 배우 모집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그때 지금 작품인 '록키호러쇼' 출연 제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클립서비스 제공
정다영은 이 뮤지컬에서 '팬텀'으로 불리는 앙상블(코러스 배우)로 등장하는데, 무대에 나설 때부터 곤봉 연기를 펼치고 극 중에서 리본으로 연기하는 등 자신의 리듬체조 실력을 아낌없이 선보인다. "데뷔작인데 연출을 맡은 오루피나 선생님이 리듬체조 특기를 잘 살려 주셨다. 12년 가까이 살아온 '리듬체조선수' 정다영의 인생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한 그는 "사실 첫 공연 때 리본이 묶여서 무척 당황했다. 관객들이 '리듬체조 국가대표였다면서 뭐야' 하고 쳐다 볼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보고, 지금 이 순간의 재미로 지켜봐 주니 마음이 편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정다영은 경남 양산중부초 시절, 학교 측의 부탁으로 선수 선발을 위해 내려온 김인화(48) 코치가 정다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리듬체조부에 발탁하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그가 리듬체조를 택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양산에서 서커스단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보며 어릴 때부터 서커스에 대한 동경을 키워 온 정다영은 "처음엔 리듬체조가 서커스와 비슷한 줄 알았다"며 웃었다. 유연성을 살린 리듬체조의 동작이 꼭 서커스처럼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들게 훈련하면 할수록 '서커스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커졌고 그만둘 결심까지 했다. 그때 그를 말린 이가 김 코치였다. 1988 서울올림픽에 한국 최초의 리듬체조선수로 출전했던 김 코치는 정다영의 집까지 쫓아가 장롱 속에 숨은 소녀를 둘러업고 학교로 가 계속 연습시켰다.
정다영 제공
그렇게 시작한 리듬체조지만 재능과 노력이 더해지면서 실력이 쑥쑥 붙었다. 초등학교 6학 년 때 소년체전에서 은메달을 땄고, 중학교 1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가 됐다. 김 코치는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제자를 데리고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정다영은 개의치 않았다. "혼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서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적는 법을 배웠다"고 얘기한 정다영은 "체조를 하면서 느낀 감정과 스트레스 받은 것들, 슬펐던 일들을 모두 일기에 적었다. 나중에 연기를 할 때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노력의 결과는 인천체고 수석 입학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체육관이 없어서 도중에 김포고로 전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김포고 소속으로 나선 2013 KBS 전국리듬체조대회에서 당시 손연재(24·은퇴)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손꼽히던 천송이(21) 이수린(23)의 뒤를 이어 종합 3위에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14년엔 태극마크도 달았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부상 때문에 무통 주사를 맞고 선발전에 나가 힘들게 따낸 태극마크였다. 정다영은 "국가대표가 될 줄 몰랐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 코치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체육관에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많이 연습했더니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처럼 전도유망했던 선수가 대학 진학과 동시에 리듬체조를 그만둔다고 하니 당연히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선수 생활을 해 온 게 아깝지 않냐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리듬체조를 더 해 보라는 분도 계셨다. 나에게 철없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며 웃은 정다영은 "은퇴라고 해도 나는 아직 20대고, 지금은 경험하는 시기가 아닐까. 체조만이 나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혹시라도 선수 생활에 미련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정다영은 "미련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며 "할머니가 돼서도 텀블링을 하고 싶은데 어릴 때부터 리듬체조 하면서 몸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여기저기 아프다. 무릎 연골도 다 나갔다. 리듬체조 자체가 워낙 수명이 짧은 스포츠니까"라며 웃었다. "체육학과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 스포츠에 대해 더 연구해서 코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로 가능성을 열어 둔 정다영은 "그때가 되면 내가 지금 배우로서 하고 있는 연기나 다른 예술을 접목해 표현하는 방식을 후배들에게 알려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활짝 웃었다.
낯선 무대에 도전하는 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리듬체조에서 해왔던 연기와 뮤지컬 무대에서 해야하는 연기는 180도 달랐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뮤지컬인 <록키호러쇼> 에서 정다영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130분 넘는 공연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기괴한 표정과 아크로바틱한 동작, 그리고 노래와 춤을 선보여야한다. 연기를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노래와 춤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 앞에서 혹여 부족한 모습이라도 보일까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첫 공연 때 너무 떨려서 벌벌 떨었다"고 얘기한 정다영은 "연출가님은 물론 같이 공연하는 언니, 오빠들이 막내인데도 나를 많이 존중해주신다. 어떻게 하라고 지시만 내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표정을 만들고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같이 팬텀을 하고 있는 (오)석원 오빠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해주셔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운인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렇게 뮤지컬 무대에 갓 데뷔한 정다영은 리듬체조선수로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에 집중하고 있다. 정다영은 "지금은 연기와 노래 그리고 춤을 더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언젠가 '캣츠'처럼 몸을 많이 쓰는 뮤지컬에도 참여해 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