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과 김학범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의 치비농의 파칸사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맞붙는다.
박 감독이 부리는 '축구 마법'은 거침없다. 베트남은 지난 27일 시리아와 펼친 8강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준결승 진출이다. 박 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한판이었다. 베트남은 시리아를 상대로 후반 막판까지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박 감독은 후반 37분 응우옌반또안을 교체 투입했다. 이 교체 카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베트남은 전·후반을 득점 없이 마쳤지만, 연장 후반 3분 '조커' 반또안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지난 17일 조별리그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꺾으며 베트남 축구사를 다시 썼고 열흘 만에 다시 한 번 베트남 축구팬들을 열광케 했다. 준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베트남 전역에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땡큐 박항서, 땡큐 코리아"를 외치며 밤늦게까지 환호했다. 베트남 국영 온라인 매체인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은 "해냈다. 베트남이 아시안게임에서 준결승에 진출해 축구 역사를 다시 쓰면서 열광하고 있다"며 승전보를 알렸다. 응우옌쑤언푹 총리는 경기 직후 국영 TV를 통해 박 감독과 훈련위원회·축구대표팀·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마치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보는 듯했다.
2006년부터 경남 FC·전남 드래곤즈·상주 상무(이상 K리그)·창원시청(내셔널리그)을 거쳐 작년 10월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이미 한 차례 베트남 축구의 기적을 썼다. 그는 부임한 뒤 첫 국제 대회이었던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호주와 이라크·카타르 등 아시아 강팀들을 물리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과 선수단은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와 만난 뒤 대표국립경기장에서 성대한 귀국 환영 행사에 참여하는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베트남 축구팬들은 박 감독을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같다고 해서 '베트남 히딩크'로 부른다. 성공 비결은 '눈높이 지도'로 꼽힌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그는 자신감이 부족한 베트남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었다. 박 감독의 사랑을 받은 베트남 제자들은 스펀지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박 감독은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고, 조국을 너무 사랑한다. 하지만 현재는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다. 감독으로서 책임과 임무를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 감독은 가시밭길을 헤치며 4강 고지를 밟았다. 한국은 지난 27일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과 펼친 8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4-3으로 극적인 재역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올랐다.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일격을 당해 경기력을 비판받았다. 개막 전엔 '황의조를 성남 FC 감독 시절 사제 간으로 지낸 인연 때문에 발탁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다행히 황의조는 이번 대회에서 8골을 터뜨리며 '인맥 축구' 논란을 일축했다. 그는 그간 겪은 마음고생이 터져 나와 우즈벡전에서 승리한 뒤 방송 인터뷰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이겨 낸 김 감독은 이번에도 맞춤식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김 감독은 '학범슨(김학범+퍼거슨)'으로 불리며 K리그 최고 지략가로 통한다. 상대를 분석해 내놓는 맞춤형 전술로 유명하다. 그가 '전술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축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시절 경력이 초라했다. 태극마크를 달아 본 적도 없다. 국민은행에서 은퇴하고 은행원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부터 성남 일화(성남 FC 전신) 수석 코치를 맡으면서 연구를 통한 날카로운 분석력을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았다. K리그(강원 FC·성남·광주 FC) 감독 시절엔 경기 하루 이틀 전 아예 감독실에 틀어박혀 밤새 상대를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분석이 끝나면 영상을 편집해 선수들에게 '속성 과외'를 했다. 2014년 시민 구단 성남을 이끌고 달성한 FA컵 우승이 대표적인 성과다. 2006년엔 '델파이법(전문가의 경험적 지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활용한 축구 훈련 방법에 관한 내용 분석'이란 논문으로 명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잘할 거다. 나도 선수를 믿고 선수들도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K리그 무대만 따지면 김 감독이 박 감독을 앞선다. 김 감독은 K리그에서 박 감독과 총 열 차례 맞붙어 8승1무1패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