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 가는 빚에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든다." 남양유업 전 대리점주 A씨의 하소연이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2013년 갑질 파문 당시 사장이 직접 사과했지만 그 이후 대리점주들의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남양유업의 갑질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토로했다.
"회사 믿었는데… 적절한 보상 못 받았다"
남양유업 갑질 사태는 2013년 촉발됐다. 당시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할당해 판매하는 '밀어내기'를 해 논란을 야기했다.
'밀어내기 영업'이란 본사에서 대리점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량을 떠넘겨 강매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대리점주들은 본사에서 떠넘기는,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빚져서라도 사야만 했다. 물건을 많이 팔아도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특히 당시 '갑'의 위치에 있던 30대 본사 직원이 '을'인 50대 대리점주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는 녹취 파일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결국 남양유업 사장은 당시 막말 파문과 밀어내기 등 영업 관련 갑질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A씨 주장에 따르면 남양유업 갑질 사태가 벌어지고 5년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남양유업이 갑질 사태 이후 조직적으로 본사에 문제를 제기한 대리점주들에게는 일정한 보상을 한 반면 회사에 협조해 '상생협약서'에 서명한 대리점주들에게는 제대로 된 피해 구제를 하지 않아서다.
A씨도 상생협약서를 작성한 경우다. 그는 "남양유업 본사는 피해 보상을 요구한 대리점주에게는 수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한 반면, 회사 요구에 수긍해 상생협약서에 서명한 대리점주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본사를 믿고 상생협약서에 서명했지만 밀어내기로 인한 빚을 거의 구제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생협약서를 작성한 대리점주들은 협약서에 '본사의 지원을 수용하고 더 이상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독소조항이 있어 법적 대응을 못하는 처지"라며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다 보니 현재까지 누적된 빚이 수억원에 달한다. 높은 이자율 탓에 빚이 계속 쌓여 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적절히 보상했다… 시스템도 개선했다"
A씨의 주장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갑질 파문 이후 피해 보상을 요구한 대리점주에게는 평균 1억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상생협약서를 작성한 대리점주에게는 보상금에 상응하는 위로금과 대리점 프로모션 비용을 지원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전국대리점협의회에 소속된 현직 대리점들과 손해배상 소송 등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긴급 생계자금 120억원을 지원했고, 연간 250억원이던 프로모션(마케팅) 지원비를 500억원으로 늘리기로 협약, 지금까지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리점주들에게 상생협약서 작성을 강요한 적이 없고, 피해 보상을 요구한 대리점주들에 준하는 보상을 실시했다"며 "A씨의 주장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도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채원일 남양유업전국대리점연합회 회장 역시 "본사의 갑질이 여전하다는 것은 A씨 개인의 주장일 뿐 연합회의 생각은 다르다"면서 "5년 전 갑질 사태 이후 납품 시스템이 모두 전산화되는 등 투명해진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는 물품 밀어내기와 더불어 유통기한 날짜가 임박한 제품의 판매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며 "과거에 비하면 대리점을 운영하기에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끊나지 않는 갈등…악화되는 실적
'갑질' 사태를 둘러싼 본사와 일부 대리점주들의 갈등이 5년 넘게 지속되면서 남양유업의 실적이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 유업계 라이벌인 매일유업과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남양유업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7.8% 감소한 50억원에 그쳤다.
매출액은 1조1669억원으로 전년 대비 5.8% 감소했고, 당기순이익 역시 65억원으로 82.4% 급감했다.
부진한 실적은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1분기 매출이 254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4%나 줄었다.
매일유업도 매출이 줄었지만, 감소율은 2%에 그쳤다. 두 회사의 매출 격차는 지난해 1분기 587억원에서 올해 1분기 666억원으로 벌어졌다.
수익성 면에서 양 사의 격차는 더욱 현격하다.
매일유업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64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6억원이나 늘어난 데 비해 남양유업은 2억원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일유업의 영업이익률이 5.1%인 데 비해 남양유업의 영업이익률은 0.15%에 불과하다.
제품 1만원어치를 팔아 매일유업이 영업이익 500원을 남기는 동안, 남양유업은 15원밖에 벌지 못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5년 전 갑질 사태 이후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남양의 태도는 그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며 "대리점주들과 원만한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남양은 갑질의 대명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