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몸을 던진 박해일(41)이다. 영화 '상류사회(변혁 감독)'로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이후 약 10개월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박해일은 왕의 용포를 벗고 정치 새내기의 풋풋한 수트를 차려 입었다. 매 작품마다 새 얼굴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박해일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강렬하다.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캐릭터에 배우로서 '연기하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을 느꼈다는 박해일은 파트너 수애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상류사회'에 합류, 정의롭지 않으면서 정의로운 인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했다.
박해일이 연기한 장태준은 욕망과 현실의 경계에서 때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모습을, 때론 코웃음 치게 만드는 허세를, 때론 꿀밤 한 대 콩 때려주고 싶은 진상 민폐를, 때론 '저 사람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싶을 정도로 냉철한 움직임을 보인다. 장태준을 둘러싼 모든 설정과 매력은 박해일이라는 배우로 인해 다시 만들어졌고, 관객들을 묘하게 설득시킨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장태준만 놓고 봤을 때, 박해일이 왜 '끌렸다' 말하는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어느 덧 충무로 중견 배우가 된 박해일은 조용하지만 쉼없이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해일은 "1년 반에 한, 두 작품 정도가 현재로써는 딱 좋다"며 "지치면 쉰다. 나이가 인정하는 아저씨가 됐기 때문에 적당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차기작도 이미 정했다. 대선배 송강호와 만난다. 아재개그의 기준은 잘 모르지만, 딱히 개그에 소질이 없다고 하지만 박해일은 인터뷰 중간 중간 깨알같은 입담을 자랑하며 유연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세월히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박해일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장태준 역할이 배우 박해일에게는 '욕망'이었다고 표현했다. "장태준에게 정치 입문이 기회였다면 나에게는 장태준이 기회였다. 장태준은 낯설다기 보다는 애매했다. 찾아 온 기회를 잡았고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나. 현실에서도 보이지 않게 목적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활용 되어질 수 있다. 영화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 장태준의 결정은 딱 장태준 다웠다. "실제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해도 솔직히 난 당하고 싶지 않다. 장태준 역시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오는 길을 택한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 무리들에 섞일 수 있으니까."
- 어떻게 준비했나. "내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의지했던 것이 기사와 뉴스다. 영화 초반 장태준이 TV토론에 나가 제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인다. 진짜 경력이 오래 된 앵커 분이 앞에 계셨고, 내 옆자리에도 그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연기인데도 불구하고 압박이 느껴지더라. 현장은 실제 뉴스 부스이기도 했다. 그게 보는 것과 직접 앉아 하는 것은 너무 달랐다. 장태준의 감정이 훅 치고 왔던 것 같다. 기사와 뉴스도 평소에는 다른 일상을 하면서 보고 듣는 정도인데 이번에는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싶으면 더 집중해서 봤다.
- '전형적인 한국남자'라는 대사가 있다. "전형적인 한국남자의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뭘까? 뭘까요?(웃음) 근데 전형적인 한국남자면 그걸 못 본 걸로 할까? 난 그 장면과 대사가 이 부부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변 상황이나 각자의 목표가 틀어지더라도 이미 탄 한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것. '우리라도 잘 살자' 부부의 관계를 원상복귀 시키는 결정적 대사라 생각한다."
- 실제라면 어떨까. "수애 씨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큰 사건을 겪고 나면 이 둘도 헤어질 수 있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수애 씨는 '안 그럴 것 같다'고 하더라. 같지만 다른 그 마음이 영화에서도 잘 표현된 것 같다."
- 직접 연기한 입장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면이 있다면. "극중 오수연이 '맘대로 해!' 하면서 USB를 집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난 소파에 앉아 노트북에 USB를 꽂고 그걸 바라본다. 슬펐다. 촬영 때 감독님도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이걸 어떻게 연기할지 집중해서 본 것으로 알고있다. 나도 내 모습이 궁금하더라. 시나리오에 어떤 가이드라인이 쓰여 있지는 않았다. 근데 그 시점의 장태준으로서 '내가 이런 상황까지 만들려고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마음에 약간 슬프더라. 울적한 기분으로 찍었다. 결과물을 볼 때도 혼자 울컥했다. 나에게는 약간 아픔이 남는 장면이다."
- 팩 붙이고 노래하는 신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괜찮았나?(웃음) 평소에는 팩을 즐겨 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땐 앞에 맥주 캔도 하나 있었고 공간 자체가 편안해서 노래까지 열심히 불렀다.(웃음) 원래는 다른 노래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최종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버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나 저거나 다 노래방 금지곡이라도 하더라. 하하."
- 능글거리는 장태주의 모습은 박해일이 연기해 그 결이 더 살아났다는 평이 많다. "어떤 장면이 그렇게 보였는지 잘 모르겠지만(웃음) 일단 애드리브는 하나도 없었다.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다 있었고 그걸 내 방식대로 혹은 장태준 방식대로 풀어 본 것이다. 잘 봐주신거면 감사하다."
- 대표적으로는 옥상신이 있지 않나. "아, 그 장면도 잘 나오기를 바랐다. 독특한 부부의 관계가 그 한 신과 대사에서 보여지기를 바랐다. 찍을 땐 엄청 추웠다. 여의도 한복판 빌당 옥상에서 찍었다. 노을이 지는 정확한 시간대에 찍어 냈어야 했기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고생한만큼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 '연애의 목적' 때 박해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 그럼 연기를 잘못한건데?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심지어 변혁 감독님은 '덕혜옹주' 김장한처럼, 서울 강남에 사는 김장한으로 연기해 달라고 주문 하셨다. 하하하. '연애의 목적'은 나 역시 생각해 보지 않아 색다른 반응이다. 다만 장태준을 딱딱한 느낌으로만 살려내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에 발 붙인 캐릭터로 보이고 싶었던건 맞다."
- 장태준은 특별한 전사가 없다. "원래는 중산층 집안에서 잘 자라 명문대에 가고, 교수가 되는 코스를 밟는 인물이라는 설정이 있었다. 근데 '굳이'라는 판단에 책에서부터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