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통령' 허재(53) 감독이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놨다. 아시안게임 2연패 좌절, 그리고 '혈연 농구' 논란 후폭풍을 이겨내지 못한 '농구 대통령'의 씁쓸한 퇴장이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5일 "허 감독이 사의를 표명해 이를 받아들였다"며 허 감독의 사퇴 소식을 발표했다. 지난 2016년 6월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허 감독은 2019년 2월 말까지 약속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 3개월 만에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됐다.
허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고 지난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아컵 3위를 기록했고 올해 초까지 진행된 2019년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도 통과했다. 그러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후폭풍이 허 감독을 덮쳤다.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성적 부진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2연패를 노렸던 남자 농구는 준결승에서 강적 이란에 패해 우승이 좌절됐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만을 꺾고 3회 연속 동메달을 따내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성적에 비하면 부진했다는 평가다. 특히 국내 프로농구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라건아' 리카르도 라틀리프(29·현대모비스)를 귀화시켜 전력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동메달에 그쳤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에 유재학(55)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위원장으로 있는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전원이 아시안게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달 중으로 전원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허 감독의 사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역시 두 번째 이유인 '혈연 농구' 논란이다. 허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25·상무)과 허훈(23·kt)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된 순간부터 '혈연 농구'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으나, 아시안게임의 부진한 성적이 겹치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특히 허훈의 경우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이견에도 허 감독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선발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부추겼다. 이에 대해 허 감독은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훈이의 키(180㎝)가 작기 때문에 다른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발했다. 웅이나 훈이가 오히려 내 아들이라 더 피해를 본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 맞다"고 얘기했다.
허 감독은 전날 귀국 후 인터뷰에서 "내년 2월까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며 감독직을 계속 이어가겠단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허 감독은 아시안게임 부진, 그리고 자신과 두 아들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 문제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기력 향상위원회가 전원 사퇴하고 허웅과 허훈을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두 선수의 대표팀 선발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됐다. 결국 허 감독은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라며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편 허 감독 사퇴로 사령탑을 잃게 된 대표팀은 김상식(50) 감독 대행 체제로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예선 요르단 원정 경기(13일)와 시리아 홈 경기(17일)를 치른다. 농구협회 김동욱 부회장은 "17일 경기까지 마친 뒤 공모를 통해 새 감독 선발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차기 감독 선임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