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 감독(52)이 돌아왔다. '오감도(2009)' 이후 꼬박 10년 만이다. 첫 영화 '인터뷰(2000)'를 만들고 개봉시킬 때만 해도 모든 것을 '뻔뻔하게' 받아 들였다는 변혁 감독은 "걱정되고, 긴장되고, 책임감도 느끼고, 그래서 두렵다"는 속내를 조심스레 털어놨다. 긴 세월 제작 환경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결국 '눈 높아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가 감독으로서는 가장 큰 목표이자 우려였다.
10년 만 복귀작으로 택한 '상류사회'는 15일까지 75만 명을 누적, 100만 명을 채 동원하지 못한 채 흥행에 실패했다. 개봉 전부터 문제작으로 이슈화 된 '상류사회'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보다 일부 장면에 대한 불편함과 불쾌감이 더 주목 받으면서 선입견에 휩싸이기도 했다. 작품을 선택하고 열연한 배우들에게, 그리고 영화를 기다리고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도 모두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변혁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상류사회'의 지향점은 명확했다. 그에 따른 관객들의 평도 겸허히 받아 들이겠다는 마음이다. 흥행 여부를 떠나 자신이 만든 영화임에도 주제 의식에 대한 흔들림을 보이거나, "영화를 잘못 봤다"며 관객들과 기싸움을 하려는 일부 감독들과는 분명 다른 태세전환이다. 변혁 감독은 개봉 전 고(故) 이은주 관련 루머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표했다. 자신이 아닌, 영화에 참여해준 이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작심한 컴백은 조용히 마무리 될 전망. 차기 행보는 미정이다. - 약 10년만의 복귀다. "일단 현장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더라. 스태프들의 처우도 좋아지고. 예전 같았으면 감독 재량대로 시간이 넘어갔을텐데 이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배우들도 시간 안에 집중하게 되고, 일각에서는 제작비가 상승됐다고 힘들어 하기도 하는데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무엇보다 필름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 많이 찍어볼 수 있고, 많지는 않지만 테스트 촬영이 OK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분량이 많아 후반 편집이 더 중요해진 것 같기도 하다."
-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음은 어떤가. "솔직히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이 크다. 첫 영화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도 되게 뻔뻔했던 것 같다.(웃음) 심은하·이정재 씨가 출연했던 '인터뷰'가 내 첫 영화다. 당시에도 좋은 배우들이었는데 시나리오가 덜 만들어진 상태에서 만났어도 '하자, 하자' 우기면 그게 통하는 시대였다. 지금은 상상도 못한다."
- 어떤 뻔뻔함인지 알겠다. "하하. 잘 몰라서 무작정 덤벼든 것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돌아오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어서 그런지 큰 시스템과 자본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실감난다. 훨씬 조심스럽다."
- '상류사회'는 상류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맞다. 나도 상류사회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아는 분들을 통해 잠깐씩 엿보거나, 언론·TV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오가기 마련이다. 이런 질문은 많지도 않겠지만 누군가 '중류사회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상류사회 어때요?' 역시 마찬가지다. 귀족스러운 분들도 있고, 갑자기 컵라면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이들도 있지만, 존경스럽다 싶을 정도로 부지런한 분들도 꽤 많다. 영화 '상류사회'도 '상류사회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1차 목표는 아니었다."
- 상류사회로 가고자 하는 길목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데 가고 싶어 하는가'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었다. 상류사회를 조금이나마 맛 볼 수 있는, 그래서 욕심 부려볼 수 있는 장태준(박해일)과 오수연(수애)의 삶과 말에 초점을 맞춘 이유다." - 가장 중점적으로 염두한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똑같이 '재벌 해체하자!' 운동 하면서도 취업 준비할 때는 대기업부터 찾는다. 나도 학생들을 이해하고 재벌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삼성에서 장학금을 받아 유학하고 그랬다. 좋은 것 나쁜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는 것, 내가 좋아서 한 것이지 그것으로 나 자신을 계속 없애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분 나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영화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부부의 선택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저런 선택을 하지? 말도 안돼'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그래, 잘했다', '어쩔 수 없지'라는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다. '나를 찾고 싶어요.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요'라는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상업영화를 함에 있어 1차 목표는 관객들과 소통이다. 그 정도는 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처럼 함께 붙어 있었다. 작가로서 최소한의 품위, 우아함 이런 것들을 지키고 싶은 욕심이었다."
- 어렵거나 힘든 지점은 없었나. "촬영 전 프로덕션 단계가 더 힘들었다. 이제는 프리 프로덕션이 어쩌면 촬영보다 더 중요한 제작 환경이 됐고. 따지고 보면 그보다 더 이전인 시나리오 세팅 작업이 제일 힘들지 않았나 싶다. 여러 의견을 취합해 최종 정리하고 결정짓는 것이 결코 쉽지 않더라. 그렇게 좋은 배우님들의 출연이 정해지고 나면 곧바로 힘을 얻고 상승곡선을 탄다. 이번엔 확실히 준비 과정이 어려웠다."
- 배우들의 덕도 있었겠다. "박해일 씨와 수애 씨는 준비성이 철저하다. 시나리오를 쓰며 불투명했던 부분들이 두 배우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감독도 그렇지만 배우들도 안정감을 얻길 바란다. 계획했던대로 찍는 것이 최선이다. 디테일한 문제점도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며 고쳤다. 현장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최대한 부드럽게 살려냈다. 그래서 큰 격없는 편집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