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의 썰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24·강원도청)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은 썰매 종목 역사에 한국 최초자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로 영원히 기록될 선수다. 그러나 윤성빈은 '최초'라는 이름 앞에 한없이 겸손했다. "최초라는 단어, 굉장히 좋은 단어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은 그는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에 영원히 내 이름이 남게 된 건 좋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고, 잊히지 않기 위해선 스켈레톤이라는 종목 자체가 계속 기억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최초의 메달리스트로서 느끼는 책임감을 전했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신문으로 1969년 창간된 일간스포츠가 창간 49주년을 맞아 한국 최초, 더 나아가 아시아 최초의 썰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을 만났다. 새 시즌 준비를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윤성빈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나 찬란했던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기억과 스켈레톤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약 반년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올림픽에 대한 것들은 잊고 원래 했던 것처럼 운동하고 있다. 올림픽을 잘 치르긴 했지만 그 전후에 뭐가 달라졌다라는 차이점을 두진 않는다. 올림픽이 선수로서 내 마지막 목표인 것은 아니지 않나.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시긴 한데 그건 좋은 거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지금은 다시 시즌을 준비 중이다.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나서 치르는 첫 시즌이지만, 부담을 갖기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똑같이 할 생각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 그건 크게 없다. 해 왔던 대로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 2018년의 윤성빈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우선 윤성빈에게 평창이란? "늘 했던 대답인데.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알리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더 큰 목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항상 최고를 유지했던 선수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나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 앞에 내가 나타났듯이, 언젠가 내게도 라이벌이 나타날 거다. 가급적이면 우리나라에서 나를 위협하는 선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그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웃음)"
- 평창은 윤성빈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나? "인생에 있어 달라진 점은 크게 없다. 대신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것 같다. 정말 모든 걸 걸고 준비했던 대회니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나 스스로 많이 실망했을 것 같다. 책임감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도와줬다고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그런 압박감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할 것만 하자 싶었다. 다행히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이 홈 트랙이었고, 항상 훈련해 온 장소다 보니 집보다 더 편해서 멘틀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 평창에서 메달을 따던 그 순간의 감격, 아직도 생생한가? "1차부터 4차 시기까지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좋았던 것보다 아쉬웠던 게 많이 기억에 남는데 1차 시기 때 보신 분들은 잘 모르셨을 수도 있지만 실수가 많았다. 그때 나를 시작으로 해서 강한 선수들이 뒤따라 내려오는 순서였는데, 끝나고 '이렇게 하면 (금메달은)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실수를 안 하는 곳에서 실수했기 때문에, 반대로 실수를 안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 두 번째 키워드라면 역시 '아이언맨'이다. 윤성빈에게 아이언맨이란? "아무래도 아이언맨이 국내에 스켈레톤을 알리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일반 헬멧을 썼다고 하면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한편으론 아이언맨 헬멧을 올림픽 때만 쓴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 사용했는데, 올림픽이 돼서야 알려진 걸 보고 확실히 대회 전엔 관심을 얻기가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많이 바뀌었다는 게 실감 나고, 올림픽이 끝난 뒤 많은 힘을 얻었다."
- 영화 '아이언맨'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 된 기분은? "같이 있는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조금 현실감이 없었다. TV로만 보던 국내 스타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와 또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히어로물 영화 주인공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살면서 긴장이라는 걸 해 본 기억이 없는데, 선수들이 큰 대회에 나갔을 때 머리가 하얘지고 눈앞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그때 이해하게 됐다. 질문도 많이 준비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고, 지금도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인터뷰한 동영상은 딱 한 번 봤는데 그 이후 못 보겠더라(웃음)."
- 세 번째 키워드는 '스승'이다. 스켈레톤 인생에서 윤성빈을 이끌어 준 스승을 소개해 달라. "첫손에 꼽힐 분은 역시 지금 감독님이신 이용(40) 감독님이다. 팀 전체가 하나가 돼 다 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노력하는 데 있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서로를 믿고 의존하면서 신뢰를 쌓아 갈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신 분이다. 또 고등학교 때 은사님(김영태 당시 신림고등학교 체육교사) 덕분에 스켈레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체육 쪽에서 재능을 보여 드릴 만한 걸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웃음),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나를 잘 봐 주셔서 추천해 주신 덕분에 선수를 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선수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끔 해 주신 리처드 브롬리(42) 코치. 선수를 하면서도 몰랐던 부분이 많았는데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더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다. 외국인 코치지만 서로 많은 대화를 하고, 믿음과 신뢰를 통해 최적의 것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네 번째 키워드는 소속사 선배기도 한 '피겨 여왕' 김연아다. 똑같이 비인기 동계 종목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고, 여러모로 많은 부분을 배웠을 것 같은데 어떤가. "내가 선수 생활을 하기 전부터 정상에 계셨던 분이다. 선수 생활 전후에 봤던 느낌이 많이 달랐다. 선수 생활을 하기 전에 봤을 땐 '와, 정말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선수가 된 뒤, 내가 그 입장에 서 보게 되니까 단순히 '와, 대단하다'는 감상 그 이상이다. 대단한 걸 넘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본보기 같은 선배다."
- 지금의 윤성빈을 만든 마지막 키워드는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을 하지 않았다면 뭘 하고 있었을 것 같나.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니 체육이나 스포츠 관련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농구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하진 않았을까?) 그건 모르겠다. 다른 종목을 했을 만한 계기가 없었을 것 같다.(웃음)"
- 윤성빈을 보고 스켈레톤선수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한마디 해 준다면? "스켈레톤은 접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시작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부터 힘든 종목이다. 그러나 시작하려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망설일 필요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