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Dol'은 일간스포츠 인기코너 '취중토크'의 젊고 가벼운 스핀오프 버전입니다. 트렌디한 스타들의 톡톡 튀는 요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신인 배우를 꼽는다면 단연 '버닝(이창동 감독)'의 전종서다. 거장 이창동 감독이 발탁한 신예로 화려한 데뷔 신고식을 치렀고, 데뷔작을 대표작으로 더할나위없이 깔끔한 필모그래피의 첫 장을 펼쳤다. 전종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과정을 건너 뛴 채' 시작하게 된 첫 발걸음이다. 배우로서는 '로또 당첨' 혹은 '인생 역전'의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지만, '버닝' 개봉 후 5개월만에, 부산국제영화제(BIFF) 현장에서 다시 만난 전종서는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며 여전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산은 두 번째, 부국제는 생애 처음이다. 태풍 콩레이의 콩레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오전부터 스케줄이 줄줄이 꼬였던 지난 6일. 오후 3시 예정이었던 '버닝' 오픈토크가 오후 7시로 지연되면서 모든 일정을 마친 밤 11시가 되어서야 펼칠 수 있었던 취중토크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날 밤까지 샜다는 전종서의 눈망울은 똘망똘망했다.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지만 흥미로운 눈빛도 반짝였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를 부르는 것이 맞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하루는 여유로운 부산 밤 바다와 꽤 운치있는 그림을 선물했다.
데뷔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전종서에게는 여전히 '처음' 인 것이 많다. 그 처음이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보는 모두에게 '의미있는 처음'이라는 것은 전종서의 행보를 더욱 뜻깊게 만든다. 무엇보다 전종서의 처음엔 늘 '버닝'이 있다. 부국제 참석 역시 평생을 애정할 작품 '버닝'과 함께여서 더욱 행복했다는 전종서다. "아직 관객과의 만남, 소통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저에겐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버닝' 팀을 생각보다 빨리 만난 것이 더 기뻤죠. 촬영할 때 (유)아인 오빠의 생일을 축하해줬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1년이 흘렀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오빠의 생일을 또 한 번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어요. 선물도 챙겨 주려고요.(웃음)"
갓 데뷔한 신인이기에 정보가 없어 신비주의 아닌 신비주의처럼 보이는 여느 신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궁금증이 샘솟는건 같지만, 궁금증을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간단하게 해소하기 보다는 그대로 묻어둔 채, 혹은 자연스럽게 묻어날 수 있게, 신비로운 분위기 그 자체를 지켜주고 싶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 다르다. 전종서 역시 자신을 일부러 감추려는 마음은 없다. 가만히 풀어두면 조근조근 그 순간 하고 싶은 말을 아낌없이 털어놓는다. "외로운데 안 외로운 척 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왠지 외로운걸 드러내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거든요", "저 걸그룹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아무래도 제 안에 그런 '상큼함'이 있나봐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전종서의 타고난 매력이다.
전종서는 차기작으로 여성 스릴러 '콜(이충현 감독)'을 택했다. 이충현 감독은 단편영화 '몸값'을 통해 주목할만한 신인감독으로, 전종서는 신인배우로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잔뼈가 굵은 박신혜까지 뭉쳤다. "스포가 될까봐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한국 영화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캐릭터인건 확실해요. 제가 하고 싶다 생각했던 여러 장르와 캐릭터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신혜 언니의 첫인상은 '와, 나랑 정말 다르게 생겼다'(웃음) 연기적으로, 또 외적으로 정말 많은걸 배우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추위에 취약해서 겨울 촬영이 제일 걱정되지만 열심히 달려 보려고요. 저 요즘 영화 찍고 싶어 미치겠거든요. 연기에 안달났어요."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얼마나 되나요. "잘 마시지 못해요. 소주는 반 잔, 맥주는 한 잔 정도? 마시면 바로 잠에 들 수 있어요. 술만 들어가면 얼굴이 엄청 빨개지고, 졸립고, 어지러우니까 가까이 하기 어려워요. 먹다보면 늘 것 같기는 한데, 체질상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냥 안 마시려고요."
-이번에도 맛있는 부산 음식을 먹었나요. "밀면 먹었어요. 그리고 ('버닝' 제작사 파인하우스의) 이준동 대표님이 마 주스를 사주셨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꼭 드셔 보세요. 공복에 먹으니까 딱 좋더라고요.(웃음)"
-부산은 처음인가요. "지인들과 한 번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에요. 그땐 영화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맛있는 음식만 실컷 먹고 갔어요. 암소갈비부터 시작해서 밀면도 먹고 오리고기도 먹은 기억이 나네요. 야시장도 재미있었고요. 이번엔 태풍 콩레이 여파가 잦아들 때쯤 도착했는데 파도가 너무 거세서 깜짝 놀랐어요. '버닝' 행사만 참여한 터라 아직 영화제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진 못했네요."
-'버닝' 이창동 감독·유아인씨와 오래만에 재회했어요.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버닝'으론 다시 못 볼 줄알았는데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엄청 반갑더라고요. 좋은 만큼 표현도 했어요.(웃음) '보고 싶었다'고 실컷 말했죠. 특별한 일도 있었어요. 오늘(10월 6일)이 아인 오빠 생일이거든요. 지난해 촬영하고 있을 때 생일이라고 축하한 기억이 나는데 벌써 1년이 지난 거예요. 서울 가기 전에 선물 주려고요. 작년에는 향수를 줬는데 올해도 향수를 줄까 생각 중이에요."
-관객들도 다시 만났어요. "관객 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배우도, 영화도 없겠죠. '버닝'은 제 첫 영화라, 저는 관객과의 소통도 처음이에요. 아직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믿어요."
-'버닝' 후, 어떻게 지냈나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어요. 전과 후가 똑같아요. 일상도, 그 외 변화들도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영화보러 다니고, 집에서도 영화보고.(웃음) 지금까지도요. 눈에 보이는 외부적 변화는 없지만 스스로 달라진 지점들은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느낀 점들이 제 삶에 반영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요. "음…. 조금 용기 있어진 것 같아요. 단순하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못한다' 그런 용기가 아니에요. 성격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네' 하는 당당함이 생겼어요."
-성장일까요. "'버닝'에 참여하게 됐을 때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버닝'이 평생 네 기준점이 될거고, 너를 변화시킬 것이다.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내 삶이 이렇게 변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을 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갔어요. 솔직히 지난 1년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인 오빠 생일 때문에 1년이 흘렀다는 걸 깨닫게 됐으니까요. 저를 알아보는 분들도 별로 없어서 제 삶이 변했다고 느끼지 못하나봐요. 평소에 집 밖으로 자주 돌아다니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그게 싫지는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자유죠.(웃음)"
-인터뷰는 능숙해진 것 같아요. "정말요? 인터뷰는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편하게 하려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굳이 덧붙이거나 부풀리거나 하지 않으려고 해요. 담백하게 제 모습 그대로 표현됐으면 좋겠어요."
-기사나 댓글은 챙겨 봤나요. "아뇨. 전혀요. 한창 '버닝' 홍보할 때 나왔던 기사와 댓글은 단 하나도, 아무것도 안 봤어요.인터뷰 기사도 마찬가지고요.(웃음) 최근에 와서야 몇 개 눌러보는 정도예요. 음…. 일부러 안 봤던 것 같아요.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았서요. 그냥 제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면서 지내려고 했어요." -유아인 씨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실제로도 그래요. 절 많이 챙겨줘요. 조언이나,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려고 해서 항상 감사하죠. 굳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옆에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예요. 그건 스티븐 연도 마찬가지고요."
-특별한 공감대가 있는 건가요. "그렇죠. 근데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또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화 주제를 정하고, 공통 분모를 찾고. 그런건 없었거든요. 그냥 좋아하는 게 같았고, 또 싫어하는 게 같았어요. 숨기는 것이 같았고, 드러내는 게 같았고요. 취향이나 결, 이런 것들이 비슷했어요."
-인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만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열려있는 제가 되고 싶어요. 새로운 사람을 자꾸 만나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동안 익숙한 삶,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고집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다른 이들을 더 많이 보려고 해요. 많은 사람을 만난 건 아니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매력을 갖고 있어요. 그걸 공유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거장 이창동 감독과 소통은 어렵지 않나요. "음…. 음…. 여전히 제가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해요.(웃음) 일단 그 분과 저는 영화로 만난 거잖아요. 감독님이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실 텐데, 제가 아직 그걸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제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이해를 하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그건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 같고요."
-'버닝' 이후, 혹은 데뷔 후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나요. "아…. 너무 산으로 가면 안되는데.(웃음)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었어요. 촬영을 하지 않으니까 정말 할 게 없더라고요. 그만큼 현장이 너무 재밌었나봐요. 분명 힘들었는데, 일상에서는 그 정도의 강렬함을 느낄 수가 없더라고요.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그 정도로 내가 짜릿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원한다고 촬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찾은 일이 그림이었어요. 과거에 화실을 오래 다녔었거든요. 한 번 가면 8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는데 당시엔 재미가 없었어요. 근데 요즘 생각이 나더라고요. 전문성을 띄는 그림이 아니라 그냥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거예요."
-내면의 변화는 확실히 큰 것 같아요. "계속 생각해보니까 달라진 점들이 많이 있네요. 예를 들어, 어떤 기분이 들거나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정답을 내려고 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근데 정답이 없더라고요. 그 때는 그걸 몰랐어요. '버닝'을 찍은 후에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해답을 찾는지, 어떤 것이 최선의 해답인지 스스로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생겼어요. 그 방식 중 하나가 그림이고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진 것도 변화라면 변화네요. 데뷔하고 새로운 인연이 생겼잖아요. 그들은 연기를 하면서 만난 분들이니 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되게 재미있어요."
-'버닝'은 몇 번 봤나요. "'버닝'의 모든 공식 스케줄이 완전히 끝났을 때 스티븐 연에게 문자가 왔었어요. '영화를 다시 봤더니 결국 세 명의 외로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더라. 각자 외로움이 있기에 우리가 모인 것 같다. 다시 한번 봐'라는 내용이었죠. 그 때 제대로, 다시, 천천히 봤어요. 저는 이전까지 외로운 건, 그 외로움을 드러내는건 부끄러운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 모두 다 외롭잖아요. 그걸 드러내면 좀 더 삶이 풍요로워지더라고요. '내가 외로움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닝'으로 인해 외로움에 대해 용기를 갖게 된거죠. 사실 되게 외로운데 안 외로운 척 많이 했거든요.(웃음) 저는 뭘 위해 그렇게 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