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말이 있다.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다라는 뜻으로, 실력은 없으면서 허세만으로 떠벌릴 때 쓰이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 일이다. 진나라 장수 위주와 선진은 위나라에 있는 오록성에 쳐들어가게 됐다. 이때 선진은 군사들에게 깃발을 최대한 많이 꽂으라고 했다. 군사들은 선진의 말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깃발을 꽂았고 마침내 수천 개의 깃발이 펄럭이게 됐다.
위주는 선진에게 따졌다. “적진에 소리 없이 쳐들어가야 하건만, 이렇게 많은 깃발을 꽂았으니 적이 미리 방어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선진은 웃으며 말했다. “위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늘 강대국이 쳐들어올까 봐 걱정하죠. 그런 위나라 백성들이 우리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위압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과연 선진의 작전은 통했다. 위나라 백성들은 수천 개의 진나라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피난을 가고 말았다. 오록성의 관리와 군인들도 피난을 가는 백성들 때문에 싸우려는 의지가 무너져 같이 도망가고 말았다. 진나라 군대가 오록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성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선진의 책략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록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실제 허장성세는 좋지 않은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부자가 아닌데 부자인 척, 실력이 없는데 실력이 있는 척, 지식이 없는데 지식이 있는 척하는 사람을 두고 허장성세를 부린다고 한다. 현재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이 딱 그런 모양새다.
가까운 일본을 보면 북한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군국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과 핵무기 보유 등을 이유로 군비를 증가시켜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고자 한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단지 독도 인근 바다에 매장된 천연자원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속셈을 잊어선 안 된다.
미국의 속셈은 다르다. 미국은 일본과 친해 보이지만 속으로 경계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4년간 전쟁을 통해 겪은 상처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이를 잘 아는 일본은 미국과 최대한 가까이 지내며 언제든 군국주의로 재무장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도 허장성세다. 세계에서 허장성세를 가장 잘 부리는 나라가 붙었으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중국은 ‘돈’으로 미국을 이기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돈으로는 절대 미국을 이길 수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박하려 하지만 ‘힘’에 있어 중국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중국도 미국을 이기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며 국력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허장성세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러시아까지 가세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에 속으면 안 된다. 이들의 허장성세를 꿰뚫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다고 하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그렇지 않다.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뛰어다니고 있다. 어려운 경제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보여 주는 통일의 제스처는 자칫 4대 강국과 마찬가지인 ‘허장성세’로 보일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솝우화 ‘개구리와 황소’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 한 해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이 가을, 우리에게 허장성세가 있는지 주위를 잘 살펴 실속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