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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38. 욱일기의 야욕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양파 한 뿌리’ 우화가 나온다. 옛날 한 못된 노파가 있었는데, 그녀는 생전에 착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악마들은 노파를 불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노파의 수호천사는 그녀를 살리고자 곰곰이 생전의 선행들을 되짚어갔다. 마침내 딱 하나의 선행을 발견해 하느님에게 말했다. “저 노파는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서 거지 여인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제발 불바다에서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말씀하셨다. “그 양파를 가지고 가서, 저 노파가 양파를 붙잡고 나오게 해라. 만약 불바다에서 나오면 천국으로 가지만 양파가 끊어지면 불바다에 남게 될 것이다.” 노파는 수호천사가 내민 양파를 붙잡고 불바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조심스럽게 벽을 기어올랐다.
순간, 불바다에서 고통받던 다른 죄수들은 노파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데려가 주십시오!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고!” 그 말을 마치자마자 양파는 뚝 끊어졌고 노파는 다시 불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노파를 구하고자 했던 천사는 눈물을 흘리며 불바다를 떠나고 말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우화를 통해 선행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살아생전 행한 일에 대해 되돌아본다. ‘내가 생전에 어떤 착한 일을 했지’ 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사람도 이럴진대, 국가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국가는 국민의 집합체다. 사람에게만 인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도 인생이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떠했는가. 대동아공영의 헛된 야욕에 휩싸여 주변국들을 침략하고 수탈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이후 항복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과거를 반성하지 않았다. 독일이 나치의 만행을 반성한 것과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인다. 특히 아베 정권은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를 부활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게양이 바로 그 상징이다.
지난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제주도에서 국제관함식이 열렸다. 12개국의 외국 함정 17척이 참여한 가운데 서귀포 앞바다에서 펼쳐졌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관함식 해상 사열 때 해상자위대 함정에 태극기와 일장기만 달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욱일기 게양을 고집하다가 결국 국제관함식에 불참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욱일기를 너무 과민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1892년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일본이 야심 차게 만든 깃발이 바로 욱일승천기다. 전쟁에서 패한 뒤에도 그 야욕을 버리지 않고 욱일기를 달고 전 세계를 누비는 무시무시한 전범기다. 단순한 깃발이 아니다.
이번 국제관함식에 일본이 자위대 함정에 욱일기를 당당하게 게양한 채 제주도에 올 생각을 했다니 그 저의가 가증스럽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일본은 한 뿌리의 양파를 잡고 지옥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던 노파의 최후처럼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주변국과 선린을 원한다면 일본은 하루빨리 군국주의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