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첫 페이지에 승전은 남기지 못했다. 월드시리즈에 선발 등판한 최초의 한국인 투수 류현진(31·LA다저스)이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류현진은 25일(한국시간) 류현진은 25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보스턴과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4⅔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 5탈삼진 1볼넷 4실점을 기록했다. 소속팀이 2-1로 앞선 5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놓인 뒤 구원투수 라이언 매드슨과 교체됐다. 그가 남긴 주자는 모두 홈을 밟았다. 실점은 늘었고 패전 위기에 몰렸다. 타선은 상대 불펜진을 공략하지 못했다. 다저스는 2-4로 패했다. 원정 2연전을 모두 내줬다.
명예회복+선입견 격파 노린 류현진
류현진은 밀워키와의 챔피언십시리즈(CS) 1차전에선 승부처에서 컷 패스트볼(커터) 의존도에 발목 잡혔다. 6차전에선 체인지업과 커브가 공략당하며 1회에만 4점을 내줬다. 이날 경기에서 '빅게임피처' 면모를 되찾고, 원정경기에 약하다는 인식을 지우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투구 지향점이 확실했다. 체인지업을 버렸다. 1회는 1구도 던지지 않았다. 타자 상대 공략 포인트도 명확했다. 아메리칸리그 MVP 후보인 무키 베츠, 타점왕 J.D. 마르티네즈 등 강타자와의 승부는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 속구 계열을 주로 구사하는 정공법으로 나섰다 1, 2회 선두타자로 맞은 두 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하며 효과를 봤다.
'신성' 강타자를 상대로는 커브를 결정구로 구사했다. 1차전에서 역대 세 번째 좌완 상대 4안타를 기록하며 다저스 마운드를 흔든 앤드류 베닌텐디, 올 시즌 21홈런을 기록하며 거포 유망주 면모를 증명한 라파엘 데버스와의 승부에서 통했다. 두 타자 모두 첫 승부에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2회초 1사 뒤 잰더 보가츠에게 좌전 2루타, 2사 뒤 이안 킨슬러에게 좌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먼저 1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실점 뒤 무너진 CS 6차전과는 달랐다. 수비의 도움을 받아 이닝을 끝냈고, 이어진 3, 4회 투구에서도 무실점을 이어갔다.
커윈 댈리 구심의 좁은 스트라이크존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보스턴 선발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마운드 위뿐 아니라 공수 교대 때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류현진은 4회 1사 뒤 보가츠와의 승부에서 유독 잡히지 않던 몸쪽(우타자 기준) 낮은 코스 공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차분한 투구로 까다로운 심판을 넘어섰다.
잡히지 않은 아웃카운트 한 개
다저스 타선은 4회 공격에서 맷 켐프의 희생플라이와 야시엘 푸이그의 적시타로 2점을 지원했다. 류현진은 5회 선두타자 킨슬러, 후속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를 각각 땅볼과 팝플라이로 돌려세웠다. 승리투수 요건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였다.
상황이 돌변했다. 9번 타자 승부에서 일격을 당했다.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했다. 이번 포스트시즌 타율 0.240, 시즌 타율 0.207에 불과한 선수다. 유리한 볼카운트(1-2)에서 던진 커터가 가운데로 몰렸다. 실투였다.
이 상황에서 베츠, 베닌텐디와 세 번째 승부를 했다. 1차전에서 다저스 에이스 커쇼를 흔든 타자들이다. 류현진도 발목을 잡혔다. 베츠에겐 성급했다. 원 스트라이크에서 다시 커터를 던지다가 중전 안타를 맞았다. 투수의 공은 타자의 눈에 익었고 패턴도 익숙해졌다. 상대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였다.
베닌텐디와의 승부를 앞두고 릭 허니컷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배합 얘기를 나눈 것을 보였다. 앞선 통한 커브 승부를 유지했다. 볼카운트 2-1에서 커브로 카운트를 잡았다. 오스틴 반스 포수와 긴 사인 교환 끝에 결정한 구종도 같았다.
그러나 베닌텐디가 세 번 당하지 않았다. 타임을 요청해 류현진의 투구 타밍을 끊었고 풀카운트에서 들어온 커브 2개를 모두 커트해냈다. 결국 중압감에 흔들린 류현진이 실수를 했다. 8구째 던진 포심이 백네트로 흐를 만큼 빠졌다.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만루를 자초했다.
구원 난조+로버츠 오판...빌미는 류현진
이 상황에서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우완 불펜투수 라이언 매드슨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후속 스티비 피어스에게 밀어내기 볼넷, 이어진 마르티네즈와의 승부에선 2타점 우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2-4로 역전을 허용했다. 류현진의 실점도 4점으로 늘었다. 이날 경기 승부가 갈린 순간이다.
류현진은 피어스와의 승부에서 모두 내야 뜬공을 유도했다. 잘 잡았다. 그러나 정규시즌 좌완 선발을 상대로 타율 0.337를 기록한 타자다. 야구는 확률 싸움이다. 교체 타이밍은 큰 논란이 아니다. 문제는 1패 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더 좋은 투수를 투입하지 않은 선택이다. 매드슨은 1차전에서도 커쇼가 남긴 주자 2명의 득점을 막지 못했다. 바에즈는 현재 불펜 에이스다. 경기 뒤 로버츠 감독은 "매드슨이 적합하다고 봤다"고 했다. 스포츠 전문 매체 CBS스포츠는 "다저스 감독이 지나치게 경기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2001년 김병현(애리조나), 2009년 박찬호(필라델피아)에 이어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른 세 번째 투수가 나왔다. 심지어 당당히 상위 순번 선발을 맡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불펜 난조는 결과론이다. 5회 역전의 시발점은 2사 뒤 9번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류현진이 빌미를 제공했다. 선수도 "이닝을 끝낼 수 있는 순간에서 내가 잘 던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