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사령탑을 두루 거친 SK 트레이 힐만(55) 감독. 그의 가을 야구 라인업은 변화무쌍하다.
SK는 넥센과 플레이오프(PO) 5경기, 두산과 한국시리즈(KS) 3경기 등 총 8경기에서 같은 라인업을 적어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전 경기와 비교하면 타순뿐 아니라 적어도 1~2명의 선발 출장 선수가 달라진다.
힐만 감독은 KS 1차전에 '간판타자' 최정을 제외하고 박정권을 4번 타순에 배치했다. 최정의 팔꿈치 통증을 그 이유로 들었지만, 두산 선발 조쉬 린드블럼에 올 시즌 6타수 무안타로 고전한 상대 전적도 고려했다. 또 3루와 2루 경험이 적은 강승호와 박승욱을 선발 명단에 넣었다. 박정권은 결승홈런을 쳤고, 강승호-박승욱은 실책 없이 수비를 마쳤다. 2차전에선 최정이 라인업에 복귀하고, 박승욱이 선발 출장해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3차전에 모처럼 선발 출장한 정의윤은 주루사를 범했지만, 안타와 실책 등으로 두 차례 누상을 밟았다.
대타 작전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KS 3차전 5-2로 앞선 8회초 박정권 타석에서 두산이 마운드를 우완 박치국에서 좌완 장원준으로 교체하자 우타자 나주환을 대타로 기용했다. 나주환이 안타로 출루, 후속 이재원이 2점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대타 작전은 성공 쐐기점의 발판을 놓았다.
PO 5차전에서는 3-3 동점이던 2사 만루에서 우타자 허도환 타석에 나온 왼손 대타 최항이 3타점 2루타를 뽑아냈다. 7회에는 좌타자 박정권 대신 우타자 나주환이 점수 차를 넉 점으로 벌리는 적시타를 쳤다.
가을 무대에서 기용 중인 베테랑의 활약도 눈부시다. 노수광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김강민을 붙박이 리드오프로 기용해 재미를 보고 있다. 정규 시즌 14경기에서 타율 0.172에 그친 박정권은 PO 1차전 결승홈런, KS 1차전 결승홈런을 각각 기록했다. 작은 변화지만 라인업 변화와 대타 작전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고 있다.
야구는 결과론이다. 마운드나 선수 기용 변화가 성공하면 칭찬받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많은 비난에 휩싸인다. 이에 힐만 감독은 KS 3차전을 앞두고 "(2차전 3-4로 뒤진 8회 2사 1루) 김동엽 타석에서 왜 대타를 기용하지 않았냐는 질문만 받았다. 박승욱의 좋은 활약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고 애교 섞인 투정을 하기도 했다.
힐만 감독의 라인업 변화는 소폭이다. 앞선 경기와 비교하면 1~2명의 얼굴만 바뀔 뿐이다. 다만 PO 1차전부터 KS 3차전까지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한 선수는 김강민과 제이미 로맥, 한동민 등 셋뿐이다. 고정 타순은 올해 포스트시즌 타율 0.394를 기록 중인 리드오프 김강민이 유일하다. 힐만 감독은 상대 투수와 전적, 투수 유형 등을 고려해 타순 및 대타 기용을 결정하고 있다. 조금씩의 변화를 통해 선수단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로 이끌어 내려 한다.
힐만 감독은 2003년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사령탑에 부임한 뒤 2006년 만년 하위팀 니혼햄을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놨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LA 다저스와 휴스턴의 벤치코치를 역임했다. 선이 굵은 메이저리그와 정교한 일본 야구를 모두 거친 그는 큰 무대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SK의 가을 야구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