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JTBC 월화극 '으라차차 와이키키' 싱글맘 연기의 연장선으로 MBC 수목극 '내 뒤에 테리우스(이하 내뒤테)' 고애린 역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긍정적 사고와 밝음을 유지한 쌍둥이 엄마로 비타민 매력을 발산했다. 이 덕분에 '내뒤테'는 지난 15일 종방 당일까지 수목극 1위 왕좌를 지켰다.
'소지섭의 파트너'란 무게감은 예상보다 컸다. 주변에서 다소 약한 캐스팅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정인선은 그 부담감을 연기력으로 극복했다. 1996년 드라마 '당신'으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23년 차. 어엿한 성인 배우로서, 주연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정인선은 "매일매일이 이렇게 과제였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와 중간과 끝의 차이가 가장 큰 캐릭터였다. 입체적이라서 매력적이었는데 표현하기 어려웠다. 한계를 느끼며 찍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다. 어안이 벙벙하다"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가장 큰 과제라고 느꼈던 점과 관련, "아무래도 두 아이의 엄마자 경력 단절 그리고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어 책임감을 느끼며 씩씩하게 살아야 했다. 서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 속에서 유쾌한 롤을 맡아야 한다는 것과 소지섭 오빠 옆에서 간질거리는 그림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게 쉽지 않았다.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처음부터 긴장을 많이 하고 시작했다. 방송을 타기 직전까지 많이 울었다. 울다 지쳐 잠에 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오빠 옆에 내 이름이 있는 게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걸 누가 이해해 줄까 싶었다. 그 압박감이 날 되게 많이 눌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처음엔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이게 고애린 역할이라서, 입체성을 가지고 있고 삶에 치이는 모습을 가진 인물이라서 오빠 옆에 서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힘이 됐던 건 소지섭 오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처럼 대해 줬다. 그것만 보고 5개월간 달려왔던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큰 버팀목이었던 만큼 소지섭을 향한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혼자 상상할 때 오빠가 굉장히 샤이한 분이거나 츤데레인 줄 알았다. 말이 많지 않은 담백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흥이 많더라. 친해지고 나서부터 대화도 정말 많아졌다. 오빠가 먼저 대화도 걸어 주고 길게 대화가 잘 이어지는 편이었다. 유머 코드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점이 의외였다"고 답했다. 정인선은 소지섭을 보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 생각대로, 신념대로 행동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적인 부분이나 현장에서 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유연하다. 이분처럼 앞으로 연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아역으로 시작해 성인 배우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성장통을 극복하기 위해 정인선은 '쉼'을 택했다. "내 연기가 싫었다. 그래서 내 시간을 가지게 됐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내 안으로 많이 들어갔다. 그 시간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그때 이후로 내 삶에 대한 주관을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한다. 항상 힘든 것이 반복되지만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시청자 반응에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피드백의 중요성을 '으라차차 와이키키'와 '내뒤테'를 통해 깨달은 것.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톤 앤 매너를 만든다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안 좋은 댓글도 있었고 좋은 댓글도 많았지만, 안 좋은 댓글 같은 경우 스스로 톤 조절이 가능한 건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조정했다. 이번 생에 바꿀 수 없는 댓글은 거른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라고 일컬은 정인선은 "30대엔 좀 더 나만의 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역할 저 역할을 다양하게 맡고 싶다. 역할의 한계 없이 생각해서, 준비해서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