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목적은 다양하다. 당연히 여행하는 것이 주가 될 수 있고, K뷰티로 인한 일명 '의료 관광', 비즈니스 거래를 하기 위한 방문 등 굵직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국내에서 이 시장에 주목한 기업이 있다. 코스모진이다.
정명진 코스모진 대표는 모든 여행사들이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관광)에 집중할 때 반대로 인바운드(외국인 방한 관광) 시장에 뛰어들었다. 1998년 IMF 직후 한국과 타 국가 간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야말로 ‘목적’이 있어 한국에 온 귀빈(VIP)을 의전하는 관광 전문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정 대표는 “예전에 다녔던 기업에서 각 국가의 협회가 모이는 국제회의 관련 기획 업무를 담당했는데, 국내에는 각 국가에서 모이는 귀빈들에 대한 환대 서비스를 제대로 해 주는 곳이 없었다”며 “여행사 프로그램은 결국 쇼핑으로 이어지고, 늘 하고 나면 혼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 오는 귀빈들을 제대로 의전해 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코스모진을 연 건 2001년이지만, 1998년 700만원으로 지하실에서 단 둘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2명이 시작한 코스모진은 현재 80여 명의 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바운드 관광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20%씩 성장하며, 지금은 정부 기관에 자문할 정도로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코스모진은 여행사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에게 여행은 2차 목적이라고 했다. 국가적 이슈로 저명한 인사가 한국에 오기도 하고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등 1순위 목적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1순위 목적을 제외한 한국에서 모든 일들을 코스모진이 관리하게 된다. 해외 여행 상품을 구성해 내수 시장에 파는 아웃바운드 위주의 여행사가 포진한 국내에선 생소했다.
2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 코스모진 본사에서 만난 정 대표에게 우리나라 관광 시장의 유일한 인바운드 기업 코스모진에 대해 물어 봤다.
- 특수 목적의 관광이란 무엇인가.
“요즘은 삼성 등 대기업에서 우리나라로 해외 지사의 귀빈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본사를 방문한다든지 목적이 있으니까 그 목적에 있어 의뢰한 기업이 관리하고, 나머지 관광 일정이나 원하는 관광지가 있으면 중간에서 일정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정부 기관에서 초청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결혼식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오는 분도 있다. 이들을 공항 입국부터 출국까지 관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 ‘관리’라는 것이 어디까지인가. 단순히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인가.
“사실 귀빈을 초청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세세하게 체크하기가 쉽지 않다. 귀빈이 불편할 경우 직접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옆에서 '스탠바이' 하면서 컨디션을 체크하는 역할이어서 좋은 것이나 불편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걸 꺼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 귀빈이 동행한 자녀의 생일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고객사에 전달해 선물을 사 드렸더니 좋아했던 경우도 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비즈니스 거래의 경우,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을 ‘제3의 협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기억에 남는 귀빈이 있다면.
“오만이라는 나라에서 석유 회사의 회장 사모님들이 한국에 몇 번 방문했다. 이 나라는 일부다처제인데, 성형하기 위해 의료 목적으로 온 경우였다. 의료 시술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상담하고 가더라.
또 미국에서 온 귀빈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묘'를 보고 싶어 온 분도 있었다.
한번은 의뢰받은 중국 귀빈이 자녀와 함께 왔는데,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팬이었다.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와서 콘택트를 해 봤는데 잘 안 돼 지드래곤이 나왔던 JTBC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그에게 음식을 해 준 오세득 셰프 측과 콘택트 해 레스토랑을 빌려서 식사했다. 또 지드래곤이 다니는 미용실이나 그가 홍보하는 코스메틱 브랜드에 가는 등 지드래곤과 관련한 하루 일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귀빈이라고 하면 멋있고 비싼 곳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그들에겐 그런 것들이 특별하지 않다. 어설프게 꺼냈다간 우스운 모양새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의 특별한 것, 좋아하는 것과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서 전달해 주는 것이다.”
- 그래도 귀빈 의전이라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심하게 알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국가나 종교, 문화, 식단, 컨디션을 체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에게 세부적으로 체크하라고 당부한다. 또 신중하게 ‘예스’ 하라고 한다.
혹시 예약이 안 되거나 우리의 실수로 인해 고객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수로 돈 1000만원의 손해를 볼 수 있지만, 고객사에는 몇 억원의 거래가 좌우될 수도 있다.
서비스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컨펌을 받고 진행하자고 한다.”
- 실수한 경험 중 기억나는 것이 있나.
“실수가 치명적이지 않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생각나는 실수는 KTX를 타고 기업 행사 커팅 식 때문에 구미에 갔는데, 귀빈이 여러 명이었다. 역에 도착해서 내려야 하는데, 기차가 멈춰 있는 시간이 고작 5분 동안이었다. 짐을 챙기고 옷을 입고 준비하다 보니 5분이 지났고, 일부는 내렸는데 일부는 KTX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 이후부터는 도착하기 10분 전에 시간을 고지하게 됐다. 이렇게 실수로 비가 오니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 가고 있다.”
- 체크하는 부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예를 들어 날이 갑자기 추워졌을 경우 미리 알려 준다. 지역 행사로 교통이 복잡하면 미리 알려 줘 그들의 의사를 묻는다든지, 못 먹는 음식을 사전에 물어봐 식단을 구성하는 것 등이다. 이번 주만 해도 파주에서 축제가 열려 지역 도로가 막힌다. 교통에 차질이 생겨 시간이 더 소요되는데, 가겠냐고 묻는 것이다.
소수의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진행하니, 세부적인 사항이 필요하다. 여행사들이 상품을 만들어 두고 모객한다면, 우리는 고객이 오면 그들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 1차 목적 이후 2차 목적이 여행이라고 했다. 한국에 방문하는 관광객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나.
“한국적인 것들이다. 얼마 전에 이효재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어 보고, 체험하고, 보자기로 포장하는 것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우리나라 전통의 채식 위주의 건강한 음식을 먹고 체험하는 3시간 동안 귀빈들이 너무 좋아했다.
비무장지대(DMZ)와 공동경비구역(JSA)은 귀빈들이가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다. 남북한의 관계와 현재진행형인 분단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소장한 것들이 있으니 이를 자신 있게 보여 줘야 한다. 어렵게 접근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본의 경우 이전엔 우리나라보다 인바운드 관광객이 뒤처졌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의 두 배가 됐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고 유명한 도시를 지정, 거기에 이야기를 입혀 홍보해 이뤄 낸 것이다.”
- 코스모진 같이 인바운드를 전문으로 한 기업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특수 목적 관광은 다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광업의 대부분은 여행이 목적이다. 여행사 대부분은 다수에 집중하고, 사업화한 것일 뿐이다. 현재 인바운드를 일부에서 하고 있지만, 여행사에서도 코스모진에 의뢰하는 상황이다.”
- 우리나라의 관광 시장은 어떤 상황인가.
“국내 관광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는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어 업계가 힘들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유커들은 대대적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업계가 바뀌어야 한다.
그들을 위한 콘텐트나 호텔도 바뀌어야 한다. 시설만 구축하고 알아서 들어오길 바라면 안 된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에 실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화·글로벌화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정보를 잘 찾지만 외국인이 한국의 정보를 찾기는 어려운 구조다. 글로벌 OTA에 한국을 오픈해 놓지 않은 곳이 정말 많다. 국내 관광 업계가 서로 협업해서 내부 콘텐트를 하나로 만들어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할 것 같다.”
- 이 같은 상황에서 코스모진이 나아갈 방향은.
“코스모진은 어레인지먼트에 특화돼 있다. 콘텐트를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같은 경복궁이어도 그냥 궁을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라간에서 음식을 만들고 체험하게 한다든지, 갤러리에 가면 개인에게 도슨트를 진행한다든지 등 특별한 포인트를 하나씩 만든다.
이렇게 그동안 진행한 정보를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국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직급에 따라 이들이 좋아하는 퍼포먼스가 어떤 것인지 데이터화해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코스모진을 인식시키는 단계다. 향후 이런 데이터가 쌓여 코스모진은 한국의 컨시어지 서비스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