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 한승근(41)씨는 최근 식당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1인분에 1만2000원인 삼겹살의 양이 고작 7조각에 그쳤기 때문이다. 양이 턱없이 모자라 2인분을 추가한 뒤 찌개와 밥·음료수까지 먹고 나니, 3인 가족 한 끼에 6만원이 훌쩍 넘었다. 한씨는 "삼겹살뿐 아니라 곱창만 봐도 가격이 1만6000원 정도 되는데 양은 150g밖에 안 돼서 배가 차는 것 같지 않다"며 "급격히 오른 물가 탓에 외식하기 무섭다"고 했다. 외식 대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싶어도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들다. 치킨 한 마리에 2만원인 시대기 때문이다. 한씨는 "주변 사람들끼리 '자식 성적이랑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며 "외식 물가는 앞으로 더 오를 텐데 생활비가 너무 빠듯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저물가라는데 정작 외식 물가는 2.7%↑ 치솟는 외식 물가에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불황으로 소비자물가는 정체되고 있지만 외식 물가는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서민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어서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외식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상승했다. 이는 2011년 1∼10월(4.3%)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외식 물가는 자장면·김치찌개 등 서민들이 자주 소비하는 음식 39개 품목의 물가를 측정한 것이다.
품목별로 보면 떡볶이가 올해 1∼10월 5.1%나 올라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갈비탕(5.9%) 자장면(4.4%) 볶음밥(4.0%) 등은 2011년 당시 물가 상승 폭에 근접했다.
실제 직장인 점심값은 올해 들어 500원·1000원 등 조금씩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 명동의 한 한식당은 대표 메뉴인 김치찜과 김치찌개 가격을 8000원에서 최근 8500원으로, 중구의 한 평양냉면집은 물냉면 한 그릇 가격을 지난해 1만3000원에서 올해 초 1만4000원, 최근 1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연명모(37)씨는 "회사 주변 식당들이 최저임금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 탓에 점심을 사 먹기 겁난다"며 "최근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자영업자들도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생기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외식 업체 경영주 3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외식 산업 경기전망 지수는 67.41로 지난 2분기보다 1.57포인트 하락해 2분기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2만원 치킨' 시대… "배달 음식도 비싸다" 외식 대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만만치 않다. 야식의 대명사인 치킨은 '2만원 시대'를 맞았다.
BBQ는 프라이드 대표 제품 '황금올리브'를 기존 1만6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2000원 인상하는 등 3개 제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2009년 이후 9년 만에 이뤄진 가격 상승이다. 기본 프라이드치킨의 가격은 1만8000원인데 배달비 2000원을 포함하면 2만원이 되는 셈이다. 3대 피자 브랜드들도 가격을 조정했다. 피자헛은 주요 피자 가격을 1000원 올렸다. 미스터피자는 400∼2000원의 가격 인상을 실시했다. 지난 4월 이미 가격을 올린 도미노피자는 지난달부터 고객 혜택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국내 경기 부진이 예상되는 내년에도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외식 물가가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을 당초보다 0.1%포인트 낮은 2.6%로 제시했다. 이는 2.7∼2.8%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보다 증가율 전망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총수요 부족 등으로 충분한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외식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손님은 없고 비용만 올라가니까 객단가를 올리기 위해 외식 업체들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고,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는 데 힘써야 외식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