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PD의 명성과 내공은 무시할 수 없다. 영화 '역린' 이후 4년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이재규 감독이 '완벽한 타인'을 통해 명장의 노련함을 다시 한 번 뽐냈다. '역린' 역시 연출가로서 후회가 남는 작품은 아니지만, 드라마 PD가 아닌 영화 감독으로서 첫 출발에 많은 교훈과 반성을 얻게 만든 것은 사실. 절치부심 4년간 갈고 닦아 내놓은 작품은 신선함을 바탕으로 웃음과 감동, 현실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 지금 현 시대 관객들에게 가장 통할 수 있는 영화가 됐다.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압도적 흥행 레이스를 펼친 '완벽한 타인'은 누적관객수 520만 명 돌파에 성공, 개봉이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톱10 내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휴대폰 잠금해제'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같은 공간, 7인의 등장인물로 현 사회의 문제점들과 인간상을 담아내는 것은 물론, 선물같은 목소리 출연 등으로 영화적 재미까지 더했다. 약 한 달 반이라는 촬영기간 동안 '짧고 굵은' 작품으로 완성된 '완벽한 타인'에 관객들은 공감했고, 또 열광했다.
감독에게도, 배우들에게도 도전이나 다름 없었던 작품의 결말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이 됐다. 또 배우와 관객 모두의 호평을 받은 이재규 감독은 '흥행 감독' 타이틀을 되찾으며 차기작을 기대케 했다. 이재규 감독이 준비 중인 차기작은 첩보 액션 영화와 학원 좀비 드라마. 올해 영화계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충무로의 숨구멍이 된 '완벽한 타인' 만큼 차기작도 '감사한 작품'으로 탄생할지 주목된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성소수자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원작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다. 뭐라 그럴까. 누군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가장 드러내기 쉽지 않은 비밀이자 털어놨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기 힘든 비밀이다.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들도 사람이고,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그래, 뭐 너나 나나 비밀을 갖고 있는 건 똑같다'고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다양성과 현실성을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 -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 모든 부부에게 비밀과 결핍이 있다. 남들이 봤을 땐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기승전결'이 있다면 하나씩은 빼는 것을 택했다. 다 보여주면 밥을 떠먹여주는 꼴이 될 것 같더라.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준모(이서진)와 세경(송하윤) 같은 경우는 하필 '결'이 빠졌다. 사실 그들의 결말이 암시가 될만한 장면이 있었는데 촬영까지 다 하고 최종적으로 빼 버렸다."
- 다른 부부는 승과 전이 빠졌고.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은 소통에 문제가 있다. 대화를 하지만 사실상 단절된 부부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는 바람을 피우고 남편은 우울증에 걸려 있다. 하지만 왜 대화가 단절됐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또 예진이 왜 준모와 바람을 피는지도 알 수 없다. 권태를 겪는 태수(유해진)와 수현(염정아)은 극 초반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보여주지만 승은 빠져 있다."
- 준모와 세경이 삭제신은 어떤 장면이었나. "마지막에 준모와 세경이 함께 차를 타고 달린다. 겉으로는 속사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스토랑 매니저에게 걸려 온 전화로 인해 준모의 벨소리가 울리는데 준모는 춤을 추고 세경은 그런 준모를 보면서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 준모 벨소리로 선택한 'I Will Survive' 가사를 보면 '내가 너 때문에 지새운 밤이 얼만데, 난 강해졌어. 난 혼자 잘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혼자 살 것이라는 암시를 전하는 신이었다."
- 벨소리도 디테일한 반전 중 하나였던건가. "그 벨소리를 여러 번 담아낸 이유는 있었다.(웃음) 준모 전화기지만 가사는 세경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표현이 사족이 될 것 같더라. 그래서 세경의 심경 변화가 비춰질만한 부분은 모두 없앴다. 혹여 영화를 보고 가사를 찾아보는 관객들이 있다면 영화가 남긴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 노래가 다른 의미로는 게이 파티에서 많이 사용되는 곡이라고도 하더라. 중의적 표현으로 활용했다."
-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원작 결론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전제 하에 훨씬 빠르고 차갑게 끝난다. 우리는 중간에 확실한 변곡점을 뒀다. 반지가 거짓말처럼 오래 돌고 있는 신을 기점으로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로 나뉜다. 말도 안 되게 오랫동안 돌고 있는 반지를 변곡점으로 앞 이야기가 현실일 수도 있고, 뒷 이야기가 현실일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앞 이야기가 판타지, 뒷 이야기가 판타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셉션'을 오마주 했다. 잘 보면 집들이를 갈 때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돌아왔을 때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뭔가 변해있다. 문제들이 있지만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며 타협점을 찾는 결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 영화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 상상과 선택은 결국 관객 몫으로 남겨뒀다. "맞다. '파국으로 치닫더라도, 헤어지더라도 정확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시겠어요? 아니면 게임을 하지 않고 판타지 같은 따뜻한 삶을 사시겠어요?'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뒷 이야기가 현실이다.하지만 변곡점을 눈에 띄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앞이 현실이고 뒤가 판타지예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라고. 물론 어떤 것이 현실이냐는 것은 오로지 관객 해석의 몫이라고 본다."
- 감독으로서 만족도는 어떤가. "'이런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상상했던 것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 주실까' 불안하면서도 기뻤던 이유다. '역린'도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지는 못했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어떤 것을 더 잘해야 하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