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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55. 내장사 기도
제18차 백일기도가 끝났다. 이번 기도는 정말 힘들었다. 항암 치료 중단을 선언하고 시작한 백일기도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에게 추운 겨울은 최악의 계절이다. 특히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선원은 내 건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백일기도를 무사히 마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백일기도를 하면서 스스로 명을 좀 더 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악성 뇌종양과 사투를 벌이면서 솔직히 많이 지쳐 있었다. 생을 놓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백일기도를 시작하니 선원에 많은 후암 회원들이 모였다. 지방에서 KTX를 타고 오시기도 하고, 장사를 서둘러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오시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이토록 열심히 백일기도에 동참하는 회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잠시나마 생을 놓고 싶었던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됐다.
아직 도움이 필요한 분도 계시고, 인연을 맺어야 할 분도 많고, 무엇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좀 더 명을 이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그 방책을 찾던 중 우리 집안과 인연이 깊은 내장사가 떠올랐다.
내장사는 전라북도 정읍 내장산에 위치해 있다. 내장사의 ‘내장’은 ‘안에 깊이 감춘다’라는 뜻으로, 산속에 깊이 감춰져 있는 절이 내장사다. 의미심장한 사찰 이름의 내력처럼, 내장사는 우리 집안과 깊은 인연을 조용히 맺었다.
1930년대에 중수된 내장사는 차경석 조부께서 세운 보천교 십일전 건물이 일제에 의해 해체되면서 건물의 일부를 내장사로 옮겨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에 아버지 차일혁 경무관께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하던 중 부하가 실수로 내장사를 불태웠다. 한마디로 아들이 아버지 집을 불태운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해 우금치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신 차치구 증조부의 유골을 조부께서 비밀리에 뿌린 곳이 내장사였다. 그만큼 내장사는 우리 집안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아버지는 내장사를 불태운 부하를 크게 야단쳤는데, 공교롭게도 그 부하는 두 달 뒤 전투 중에 전사했다.
아버지는 내장사 화재로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소중한 전각들을 잃게 되자 상실감이 크셨던 모양이다. 그 뒤 아버지는 빨치산의 은신처가 될 수 있으니 사찰을 전부 소각하라고 한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화엄사 같은 지리산 천년 사찰들을 보존하도록 목숨을 걸고 노력을 기울이셨다. 오랜 세월 동안 내장사와 맺은 인연 때문인지, 아버지 차일혁 경무관의 흉상이 현재 내장산 아래의 워터파크 입구에 세워져 있다.
나는 계룡산과 인연이 깊지만 3대에 걸쳐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내장사야말로 나의 서원을 이룰 수 있는 사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정읍 출신의 후암 회원 몇 분께 나의 명을 이을 수 있도록 내장사에서 기도를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직접 기도를 올려야 하나 지금의 건강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젊은 시절에는 몇 시간 만에 삼천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이젠 선원에서 열두 배 절하는 것도 힘이 드니 말이다. 고령임에도 내 건강을 위해 내장사에서 기도해 주신 후암 회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 내장사 기도의 영감을 주신 한 도인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