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 포항 감독은 지난 1980 쿠웨이트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만 18세임에도 무려 7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랍에미리트연합(UAE)아시안컵 개막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결전지 UAE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한창이다.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 이후 공들여 선발한 23명의 태극전사가 한국 축구의 영광의 시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3명 모두 책임이 막중하지만, 그중에서도 최전선에서 상대 골문을 열어야 하는 '골잡이'들의 책임이 특히 무겁다.
한국을 대표하는 골잡이라면 역시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를 호령 중인 손흥민(26·토트넘)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아안게임 득점왕 황의조(26·감바 오사카)가 첫손에 꼽힌다. 이들의 활약 여부는 우승과 직결될 뿐 아니라, 한국의 통산 7번째 아시안컵 득점왕 도전으로도 이어진다. 한국은 역대 아시안컵(총 15회)에서 1960년 대회 조윤옥(4골)을 시작으로 박이천(1972년·5골) 최순호(1980년·7골) 이태호(1988년·3골) 이동국(2000년·6골) 구자철(2011년·5골) 등 여섯 차례나 득점왕을 배출한 바 있다.
지금은 선수보다 사령탑으로 더 익숙한 최순호 감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1980 쿠웨이트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만 18세의 신예로 아시안컵 무대를 밟은 최 감독은 조별리그 1차전 말레이시아와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1차전을 시작으로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최 감독은 4차전인 UAE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7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85cm의 장신에 유연성과 창의력 그리고 넓은 시야를 갖춘 최 감독은 아시안컵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지만, 준결승에서 북한에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두며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귀국했다.
국가대표 시절 최순호 감독. 중앙포토 최 감독은 "처음 대표 선수가 돼 치른 메이저 대회였는데 자신감에 차 있었다. 뭔가 잘되는 느낌이라 편안하게 경기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덧 38년이 지난 옛 기억이다 보니 군데군데 희미해져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최 감독은 "아주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며 미소를 지었다. 팀의 막내였던 최 감독은 "좌우 날개는 물론이고 미드필드 지역도 워낙 좋았다. 허정무·조영증·이영무 등 당시 선배들이 무척 잘해 줘 나는 골만 넣으면 됐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그러나 어디 '골만 넣으면 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을까. 뛰어난 신체 조건에 유연성·스피드·창의력 등 모든 조건을 갖춘 '천재' 스트라이커 최순호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득점왕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 '득점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묻자 최 감독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골을 많이 넣을 수 있을까, 골을 넣기 위해 어떤 위치 선정을 해야 할까,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경기는 경험 있는 선배들이 만들면 되는 거다. 나는 가장 어렸고, 내 역할은 공격수였으니 움직임이 많지 않더라도 골만 넣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임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또 "여러 플레이에 가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폭이 넓어지고 복잡해진다. 골잡이들은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격수로서 자기 역할, 즉 골을 넣는 일에 집중할 것. '천재'로 불린 최 감독이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다.
그렇다면 '득점왕 선배' 최 감독이 보는 이번 아시안컵의 득점왕 후보는 누구일까. 최 감독은 "손흥민은 부족함 없는 에이스, 월드 클래스다. 그런 선수에게 우리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나.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고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 선수"라고 못박은 뒤 황의조의 이름을 먼저 언급했다. "황의조는 아시아 상대로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한 최 감독은 "가장 앞에 있는 (황)의조가 가능성이 가장 많다.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 움직임에서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시안게임 때 보니 동선이 만들어졌더라. 골을 많이 넣는 선수들의 모니터링을 했다던데, 움직임이 간결해지고 골도 잘 넣더라"고 칭찬했다.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 역시 충분히 득점왕 후보로 거론할 만하지만, 최 감독은 그가 조별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점에 유감을 표했다. "조별리그에서 골을 많이 넣는 게 득점왕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명한 최 감독은 "토너먼트에 가면 아무래도 상대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골을 많이 넣고 득점왕을 차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조별리그 3경기를 더 치르는 황의조가 득점왕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뜻이다.
한편 한국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선 "쉽지 않은 일"이라며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놨다. 최 감독은 "한국·일본·이란·호주가 4강을 이룰 것이다. 확률적으로 볼 때 우승 가능성이 50% 정도 되는데, 결국 전력 싸움 그리고 전략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